“저 중에 생선 대가리 한 번 잘라본 놈 있을랑가” 불신 가득찬 노량진수산시장

“저 중에 생선 대가리 한 번 잘라본 놈 있을랑가” 불신 가득찬 노량진수산시장

기사승인 2016-04-20 18:32:55
‘노량진수산시장 정상화 촉구 총궐기대회’의 폴리스라인 옆으로 신축 건물 이전에 반대하는 상인이 지나가고 있다.

[쿠키뉴스=정진용 기자] “저 중에 생선 대가리 한 번 잘라본 놈이 있을랑가” “민주노총 물러가라”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는 수협과 상인 간에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20일 오후 서울 동작구 구노량진수산시장에서 ‘노량진수산시장 정상화 촉구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신축 노량진수산시장은 지하 2층ㆍ지상 6층(연면적 11만8,346㎡) 규모로 지난해 10월 완공됐다. 수협 측은 지난달 15일까지를 구건물 퇴거 시점으로 정하고 상인들에게 새 건물로 옮길 것을 요구했다. 수협은 안전등급에서 C등급(보강 필요)을 받은 구건물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상업 시설 등이 들어선 복합건물을 짓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상인들은 신건물 임대료가 이전보다 1.5~2.5배 비싸고 판매자리 또한 4.96㎡에 불과해 이전(6.61㎡)보다 좁아졌다며 입주를 거부하고 있다.

어민과 수협 측 “이기적인 상인 때문에 어민 힘들다”

이날 오후 2시 전국 수협 회원조합장과 어민 등 2000여명은 “새 시장으로 이주를 거부하는 상인들이 노량진수산시장의 핵심 역할인 도매 분산 기능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고 있다”며 “이것도 모자라 흉기로 수협 직원을 찌르는 만행을 저지르면서 시장 이미지까지 실추시키고 있다”고 규탄했다.

또 이들은 “상인들의 부당한 이전 거부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만 해도 매달 15억원 가량에 이르고, 이것 또한 어민들이 출자한 돈으로 메우고 있는 실정”이라며 조속한 노량진 수산시장 운영 정상화를 촉구했다.

푸른 조끼를 입고 ‘국민안전 위협하는 노량진 시장 상인 물러나라’고 쓰인 띠를 두른 충남 보령 출신 어민 김은자(58)씨는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잡음이 생긴 후로 경매가가 내려갔고 원가조차 나오지 않아 직원들 월급 주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상인들이 새 건물로 옮겨가면 어민도 살아나는데 상인들이 너무 이기적”이라고 비난했다.

대천 서부 수협 소속 이석환(49)씨는 “상인들은 자기들의 생존권이 위협받는다고 하는데 생존권이 아닌 부당이득이 위협받는 것”이라며 “건물 이미 다 지어놨는데 공간을 늘려달라며 불가능한 요구를 늘어놓는 등 을이 ‘갑질’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인 “새 건물 가면 2년 안에 망해”…일당 받고 동원됐다는 소문도

폴리스라인 건너편에선 구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이 뒷짐을 지고 총궐기를 지켜보거나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생존권 쟁취’ 라고 쓰인 빨간 조끼를 입고 가게 의자에 앉아 총궐기를 지켜보던 상인 오모(58·여)씨는 “새 건물 가보면 안다. 부지가 1/3로 줄었고 여기처럼 트인 공간도 냄새가 나는데 막힌 공간에서 어떻게 장사를 하나. 쓰레기 소각장도 지하 2층에 있고 얼마 전에는 비가 와서 천장에서 물이 샜다”며 “총궐기는 무슨 다 쇼하는 거다. 우리는 여기서 계속 장사할 거고 하는 데까지 할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노량진수산시장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한상범(56)씨는 “안 들어가는 게 아니라 못 들어간다. 새 건물 들어가면 2년 안에 망할 것”이라며 “(수협 측이) 건물 다 지을 때까지 한 번도 그 안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소리 높였다.

전국 수협 회원조합장과 어민 등이 행진을 규탄 성명을 발표한 뒤 행진을 할 때는 상인들과 이들 사이에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수협 측에서 “민주노총 물러가라”고 비난하자 상인들은 “생선 이름 뭐냐고 물어보면 아무도 모를 거다”, “저 중에 생선 대가리 한번 잘라본 사람 없을 것”이라며 맞대응했다.

상인들 사이에서는 이날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이 일당을 받고 동원됐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고등어를 판매하는 홍모(59·여)씨는 “다른 상인이 화장실에서 시위 참가한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었는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서울 구경시켜준다고 해서 따라왔다’고 했다더라”라며 “수협에서 5만원, 15만원, 18만원, 피켓 든 사람들은 30만원을 주고 동원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이날 구노량진수산시장을 방문한 서울 강서구에 거주하는 김모(63)씨는 “새 건물 가봤는데 내가 상인이라도 안 들어간다”며 “사람 냄새가 나지 않고 마치 성냥갑처럼 빽빽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수협과 건물 이전에 반대하는 상인들의 대립은 법적 공방과 폭력사태까지 이어진 바 있다. 수협은 상인들을 상대로 건물을 비우라는 명도 소송을 냈으며 지난 4일에는 이전을 반대하는 한 상인이 수협 소속 관리자를 생선회칼로 찔러 7일 살인 미수 혐의로 구속됐다. jjy4791@kukimedia.co,kr
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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