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제주 발생 돼지열병, 초동방역 문제없나

[기자수첩]제주 발생 돼지열병, 초동방역 문제없나

기사승인 2016-06-30 04:02:35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지난 1998년 이후 18년만에 돼지열병(콜레라)이 발생해 도 내 축산농가가 긴장하고 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지난 28일 오전 제주도청에서 가진 언론사 합동인터뷰 자리에서 “1‧2차산업을 안정화 시킬 것”이라고 공언한 지 불과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원 지사 합동인터뷰가 있었던 이날 오후 5시께, 제주도 동물위생시험소는 농림축산검역본부로부터 제주도 내 돼지열병이 발생했음을 최종 통보받았다. 

지난 23일 동물위생시험소가 한림읍 금악리 한 양돈농가에 대한 모니터링 검사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돼지열병 항체가 확인하고 검역본부에 시료를 송부한 지 5일만이다.

돼지열병 발생 확인 다음날인 29일 오전 제주도는 도청에서 긴급브리핑을 열어 “발생농장 돼지 423마리를 대상으로 살처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발생농장을 중심으로 반경 3km를 ‘위험지역’으로, 10km 이내는 ‘경계지역’으로 방역대를 설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발생농가가 28일 도축장에 출하한 돼지 37마리와 다음날 도축 예정이었던 돼지 924마리도 살처분 조치하는 한편, 도축장 예냉실에 보관된 3393마리 지육은 모두 랜더링(열처리)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제주도는 이번 발생한 돼지열병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유행하는 종류와 99.5%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바이러스가 중국 등 외부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말이다.

만일, 현재 진행 중인 검역본부 역학조사에서 돼지열병 바이러스가 외부에서 유입됐다고 확인될 경우 제주도는 방역에 구멍이 뚫렸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돼지열병 백신을 사용하고 있는 타 지역과 달리 제주도는 지난 1999년부터 돼지열병 청정지역을 선언하고 백신 접종을 실시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도 내에 돼지열병이 확산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개된다면, 농가들은 속수무책으로 발만 동동 굴러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 '돼지 청정지역' 자부해 온 제주도, 가축전염병 대비 충분한 지 의문

제주도 동물위생시험소의 모니터링 검사에서 돼지열병 항체가 확인됐음에도 검역본부에서 돼지열병 최종확진을 받기까지 별다른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도 문제다. 돼지열병은 법정 1종 가축전염병으로 사람에게 전염되지는 않지만, 돼지에서는 고열과 피부발적, 설사, 유사산 등 치사율이 높으며, 전염이 매우 빠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주도가 검역본부의 통보를 받고 부랴부랴 실시한 초동방역 역시 ‘삐걱’거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쿠키뉴스 제주취재본부 취재 결과, 28일 제주도는 발생농가에서 살처분을 실시하던 과정에서 ‘마취제’가 모자라 약 30여마리도 처리하지 못한 채 작업을 중단하고 인력을 철수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살처분 작업은 다음날 오전 10시쯤에서야 재개됐다고 한다.

농림축산식품부 '긴급행동지침'은 돼지 살처분 방식을 '마취제 주사 후 매몰처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번 돼지열병 살처분에 참여한 도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 동안 약품(마취제)가 충분히 비축돼 있었는데, 약품 유효기간이 만료돼 교체하는 시기에 일이 터진 것”이라며 살처분 작업에 공백이 있었음을 털어놨다.

이 같은 사실은 가축전염병 발생 시 가장 신속히 이뤄져야 할 초동방역에서부터 ‘나사’가 풀린 것이나 다름없음을 방증한다.

약품 유효기간 만료일 전에 미리 교체했어야 할 살처분용 마취제가 유효기간 만료로 폐기될때까지 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도 납득하기 어렵다.

나아가 그 동안 ‘돼지 청정지역’을 자부해 온 제주도의 가축 전염병 방역 역량에 의구심이 들도록 만드는 대목이다. 

‘청정 지역’ 제주에서 사육한 돼지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까지 그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이미 제주 돼지는 단순한 축산물을 넘어 제주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그러나 ‘돼지 청정 지역’의 지위를 지속적으로 지켜나가기 위해선 지금과 같은 안이한 방역 태도로는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돼지열병 발병을 계기로 도 내 가축 방역을 더욱 강화할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한 순간의 방심으로 도민에게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농가에는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줄 수 있음을 제주도는 항상 염두해야 할 것이다. 


유경표 기자 scoop@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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