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게임유통사 넥슨이 페미니즘 커뮤니티 ‘메갈리아’ 후원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자사 온라인 게임 성우를 교체해 논란이 되고 있다.
넥슨은 지난 19일 공식 홈페이지에 “게임 클로저스의 신규 캐릭터 ‘티나’, 최강 군단의 ‘이자나미’ 음성을 교체한다”는 공지를 올렸다.
사건의 발단은 해당 캐릭터의 목소리 연기를 맡은 김자연씨가 지난 18일 저녁 자신의 트위터에 ‘여자는 왕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GIRLS Do Not Need A PRINCE)’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올린 데서 비롯됐다.
김씨는 사진과 함께 “I don’t need a hero. I need a friend”(내게 영웅은 필요 없다. 친구가 필요하다)라는 문장도 적었다.
해당 티셔츠는 메갈리아가 페이스북 코리아를 상대로 하는 민사소송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판매하고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클로저스 게시판에는 “메갈리아 성우를 내려달라”는 사용자들의 요청이 잇따랐다.
넥슨은 하루 만에 성우 교체를 결정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김씨는 지난 19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한 장의 사진이 이런 일로 변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네가 여자이기 때문에 영정 사진이나 납골함을 들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의문이 들었다”며 “그런 작은 부당함에 대한 의문이 모였고 그렇기에 성적 평등의 한 갈래를 지지한다. 저의 공부는 아직 많이 부족하고 그런 부족함이 일을 커지게 했다”고 말했다.
또 김씨는 “이번 일에 있어 회사 측은 저를 많이 배려해주시고 걱정해주셨다. 또 저는 이미 지난달쯤 녹음을 마쳤고 그에 상응하는 정당한 대가를 받았다”며 “그러니 부당해고라는 표현을 삼가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네티즌과 게임업계 종사자 사이에서 논란은 쉬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네티즌들은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만으로 심한 인신공격을 당하고 일거리마저 빼앗긴 것은 정당하지 않다” “넥슨 고객센터에 항의 전화를 하자” “‘일베(일간베스트)’ 회원임이 드러난 KBS 기자는 아직 직장에 잘 다니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부는 ‘#넥슨_보이콧’ 해시태그를 올리며 보이콧 운동도 시작했다.
게임업계 종사자 김모(32)씨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정도의 조치를 할 만한 사안은 아닌 것 같다”며 “넥슨이 자사 게임의 이미지를 생각해 단호히 대처했으나 오히려 제 발목 잡은 격”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종사자 박모(26·여)씨는 “남성층의 불만을 잠재우려 성우 교체를 강행한 것 같다”면서 “이번 사태에 항의해 탈퇴하는 사람들은 주 고객층이 아니어서 넥슨이 입을 타격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게임 개발자연대는 지난 19일 성명을 내고 “넥슨이 김씨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건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결정이 앞으로 게임개발자들의 정치적 의사 표현을 막고 특히 여성 개발자들의 목소리를 억압할 수 있다”며 “지금이라도 넥슨은 좀 더 폭넓은 해명을 내놓는 것과 동시에 게임 외적인 판단이 개입된 이번 결정을 철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넥슨 홍보팀 관계자는 “녹음비용은 이미 다 지급했고 음성만 사용하지 않기로 원만히 합의한 상태”라며 “저희 측에서 이런 논란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김씨에게 의사를 물어봤고 정중히 양해를 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온라인에서 벌어진 논쟁의 어느 한쪽의 편을 들 수 없어 최대한 중립적 입장을 취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