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핵 보다 대통령 때문에 먼저 죽겠다” 김천시민 사드반대…온도차 ‘조짐’

[르포] “핵 보다 대통령 때문에 먼저 죽겠다” 김천시민 사드반대…온도차 ‘조짐’

기사승인 2016-08-24 10:29:19 업데이트 2016-08-24 18:58:38

[쿠키뉴스=정진용, 이승희 기자] “나라 안보 위한 국책사업인데 국민이 좀 양보해야지 않겠습니까. 정부가 하는 일에 무조건 반대부터 하는 건 아니지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 됩니다. 혁신도시 죽이는 겁니다. 우리가 뭘 잘못했습니까. 대통령 해달라는 거 다 해준 게 죄지….”

경북 김천시와 성주군의 경계선에 있는 롯데스카이힐 골프장(골프장)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제3후보지로 급부상한 가운데 주민들의 반응이 시작부터 온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사드 반대 운동이 ‘한반도 사드배치 반대’ 기조 하에 결집했다 최근에서야 갈등이 표면화된 성주와는 다르게 전개되는 양상이다. 

지난 22일 김항곤 성주 군수는 국방부에 사드배치지로 제3부지를 검토해 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성주 초전면에 위치한 골프장은 성주군청으로부터 18km 떨어져 있어 성주 군민은 레이더 안전성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김천시의 입장에서는 사드가 코밑으로 다가온 셈이다. 주민 2000여명이 사는 농소면 노곡리, 연명리, 봉곡리와 남면 월명리, 부상리, 송곡리는 레이더 위험 반경으로 알려진 5.5km 안에 포함된다. 또 주민 1만4000여명이 거주하는 율곡동 김천혁신도시(혁신도시)는 반경 7km 안에 들어간다.

혁신도시와 농소면 주민들은 사드 배치를 생존과 직결된 문제로 보고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었다. 지난 23일 혁신도시에 위치한 KTX 김천구미역은 붉은 바탕에 노란색 글씨로 써진 현수막들로 가득했다. ‘사드 물러가라!!’, ‘사드배치 결사반대!!’ 문구에 붙여진 느낌표는 시민들의 극심한 반대를 보여주는 듯했다.


현수막은 주거지로 이어졌다. 아파트 각 단지 앞에는 사드 배치 반대 현수막이 여러 개 붙어있었다. 자영업자들이 24일 6시에 열리는 ‘사드 배치 반대 궐기 대회’ 참여 독려 전단지를 가게 출입문에 붙여놓은 것도 눈에 띄었다.

부동산을 운영하는 박숙민(50·여)씨는 “계약하기로 했던 손님들이 사드 제3부지 검토 발표가 난 뒤에 결정을 번복했다. 투자자들도 일주일에 몇 번씩 건물을 보자고 연락이 오던 것이 발길이 뚝 끊겼다”며 “사려는 사람은 없는데 팔려는 사람만 넘쳐난다. 밤에 잠이 안 올 지경”이라고 호소했다.

이사 온 지 5달이 됐다는 김모(38·여)씨는 “다른 엄마들과 함께 촛불집회도 참여했다. 사드는 성주뿐 아니라 한반도 전체에 배치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공기 좋고 물 좋은 동네라고 해서 아이들 때문에 일부러 이사 왔는데 황당하다. 우리 아이들을 전자레인지 속에서 키울 수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많은 농소면은 사드 반대 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장 회의를 비롯해 지난 20일부터 시작된 촛불집회가 매일 면사무소에서 열리고 있다. 주민 박모(70)씨는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포도, 자두, 복숭아 농사짓고 사는데 사드 전자파로 인해 성주의 ‘전자파 참외’ 같은 오명을 듣게 될까 봐 걱정”이라며 “5km 반경에서 벗어나 있다는 이유로 꼭 남의 일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한심하다”고 말했다.


사드 배치지로부터 반경 9-10km 정도로 상대적 거리감이 있는 평화동 김천시내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기차역인 김천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구시가지에 들어서자 사드 반대 현수막의 개수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다른 지역에서는 50m에 하나꼴로 부착돼있었으나 김천시내에서는 역 앞 3-4개를 제외하고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인근 한 현수막 업체는 “혁신도시에서 주문하는 현수막이 거의 80-90%를 차지하고 시내 쪽에서 주문을 받은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천시내 주민들 사이에서는 ‘국가 안보를 위해서라면 어디든 사드를 배치해야 되지 않겠나’라는 목소리들이 나왔다. 역전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이모(75)씨는 “북한이 자꾸 도발 하는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사드가 있어야 한다”고 단언했다.

김천 토박이라는 조모(56)씨는 “차라리 김천시 인적 드문 곳에 사드를 배치하고 혜택을 성주가 아닌 우리에게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택시기사 진언기(62)씨는 “다른 나라에서 보기에 국민이 서로 사드 배치를 미루는 꼴이 얼마나 우습게 보이겠는가”라며 “제3자 입장에서 혁신도시 주민들이 극렬하게 반대하는 것이 잘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미사일 떨어지면 집값이 무슨 소용인가 싶다”고 털어놨다.

김천시 내부에서 이처럼 지역에 따라 의견차가 나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령대가 높고 토박이들이 많이 모인 김천시내와는 달리 혁신도시는 젊은 부부들이나 외지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혁신도시에는 한국건설관리공사와 한국법무 보호복지공단 등 12개 공공기관(5065명)이 유치되는 등 외부인 유입이 많다. 

혁신도시와 김천시 여타 지역의 차이는 지난 4.13 20대 총선에서도 드러났다. 혁신도시는 새누리당 28.7%, 더불어민주당 25.5%의 지지율을 보여 새누리당 57.5%, 더불어민주당 11.7%의 지지율을 기록한 김천지역 전체 수치와 대비됐다.


농소면 월곡리에 위치한 한 부동산 관계자도 “혁신도시 거주민의 연령대가 젊어 온라인상 카페나 폐쇄형 SNS ‘밴드’를 통해 활발하게 사드 관련 정보 교환이 이뤄지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날에도 빚을 내서 혁신도시에 투자했는데 가격이 반 토막 나면 어떻게 하나’라고 울면서 죽고 싶을 정도라고 전화한 손님이 있었다”며 “사드가 배치되면 김천시의 희망인 혁신도시는 유령도시가 될 것이다. 북한의 핵 공격보다 대통령 때문에 먼저 죽겠다”고 성토했다.

농소면 마을 이장 및 지도자 등으로 구성된 ‘김천사드배치반대비상대책위원회’(대책위원회) 내부에서도 기조가 ‘성주 골프장 배치 반대’ 인지 ‘한반도 배치 반대’인지를 두고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위현복(55) 전 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대책위원회 내부에서 촛불집회 구호나 머리에 두르는 띠 문구를 두고 격하게 싸운다”며 “결국 합의를 보지 못하고 그냥 ‘사드 배치 결사 반대’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옥겸(54) 대책위원회 농소면 사무국장은 “정부가 우리를 설득하길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사드 레이더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객관적인 정보만이라도 내놔라”라며 “새누리당인 이철우 국회의원, 박보생 시장 등 정치인은 그 누구도 믿지 않는다. 내부 갈등이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지만 싸움이 길어질 것을 충분히 각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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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