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정진용, 이소연 기자] “수확 앞두고 자식처럼 키운 벼를 갈아엎는 심정, 대통령은 압니까!”
농민들은 쌀값 인상 약속을 어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배신감을 토로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6000여명은 22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일대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무분별한 쌀 수입과 재고미 관리 실패로 쌀값이 대폭락했다”며 정부를 규탄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12년 18대 대선 당시 17만원이었던 쌀 한 가마니(80㎏)의 가격을 21만원대로 인상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현재 쌀 한 가마니 가격은 평균 11만5500원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밖에도 박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직불금 인상을 통한 농가소득안정 기여 △농자재 가격 안정 △농어민 ‘안전재해보장’ 제도 도입 △농·축산물 유통구조 개선 △첨단과학기술 접목을 통한 농업경쟁력 제고 등을 약속했다.
그러나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12월29일 보도자료를 내 “(쌀값 21만원 공약) 18대 대통령 선거 농업 관련 공약에 쌀값 21만원을 약속하는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날 집회에 참여한 농민들은 공약을 모르쇠로 일관하는 정부에 불만을 표했다.
논 1만6500㎡(5000평)를 경작하고 있다는 남기영(62)씨는 “‘쌀값 21만원’ 대선 공약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면서 “지금 가격은 21만원은커녕 반토막이 났다”고 지적했다.
전남 구례군에서 25년 동안 쌀농사를 지었다는 김봉룡(51)씨는 “농촌 지역의 민심은 거의 폭발하기 직전”이라며 “이제 정부의 말을 믿는 농민은 아무도 없다”고 주장했다.
충남 당진시에서 상경한 이모(58)씨는 “정부가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내년 농사는 접어야 할 판”이라며 “앞으로 농민을 소홀히 하는 대선 후보에게는 절대 표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농민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있다는 성토도 이어졌다.
우리나라의 농민 1인당 보조금은 61만원으로 OECD 가입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전남 고흥군 출신의 김기선(73)씨는 “정부는 농민의 말을 전혀 귀담아듣지 않고 있다”며 “박 대통령은 재벌·대기업들과만 어울리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진해운에는 7000억원을 투자했으면서 쌀값 폭락은 방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6시간 걸려 상경했다는 신우식(57)씨는 “우리의 고충을 정부는 전혀 이해하지 못 하고 있다”며 “농민이 땀 흘려 노력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얻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오후 4시 농민들은 나락을 손에 쥔 채 대학로부터 종로구 청계천까지 가두행진을 벌였다.
종로 4가 부근에서 농기계인 콤바인이 대열에 합류하자 일부 농민들은 “이대로 청와대까지 행진하자”고 외쳤다.
이에 “콤바인 운행 이동은 집시법에 명백히 위반되는 행위”라며 경찰이 잠시 행진을 저지하기도 했으나 별다른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집회는 오후 7시쯤 중구 한국관광공사 사옥 앞에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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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태현 기자 pt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