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상냥하지 않아서 해고” 여성 근로자 40%의 자화상

[기획] “상냥하지 않아서 해고” 여성 근로자 40%의 자화상

정부, ‘경단녀’ 구제 위해 기존 근로자 해고하는 ‘돌려막기식’ 행정

기사승인 2016-09-26 17:48:39 업데이트 2016-09-27 15:50:56

#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지만 우리 같은 계약직은 지렁이만도 못하죠”

저임금, 쉬운 해고, 언어 성희롱에 성추행까지. 김포공항 청소 노동자들의 파업 사태는 비정규직 여성들이 겪는 고충의결정판이다. 최모(57·여)씨는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 국제청사에서 근무한 지 어느덧 7년이 흘렀지만 하루도 긴장을 늦춘 적이 없다. 그는 동료들이 ‘근무 시간에 커피를 마셨다’, ‘옆 동료와 말을 주고받았다’ 또는 ‘상냥하게 웃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나둘 떠나는 것을 지켜봤다. 일부 동료는 용역업체 간부 강제로 입맞춤하고 가슴을 만지는 등 성추행을 자행했지만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했다.

김포공항 청소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6030원과 하루 11시간 근무, 인격 모독을 모두 감내했던 이유는 딱 하나다. 이들은 매년 12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다. 최씨는 “단 하루도 불안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정규직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직접 고용이라도 되면 소원이 없겠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나라 여성 근로자 10명 중 4명이 비정규직으로 고용 불안정에 신음하고 있다. 정부는 ‘고용률 70% 달성’에 급급해 비정규직 양성을 오히려 종용하고 있다.

◇ 왜 ‘여성’ 비정규직인가?

여성 임금 근로자의 비정규직 비율은 남성의 두 배다.

통계청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6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여성 임금 근로자 842만3000명 중 비정규직 근로자는 339만5000명(40.3%)이다. 남성 임금 근로자의 비정규직 비율은 22.5%였다. 특히, 50대 이상 비정규직 대부분은 여성이 차지했다. 

이러한 차이는 임금 격차로도 이어졌다. 비정규직 여성 임금은 정규직 남성의 40%에도 못 미친다. 지난 2014년 기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여성 저임금 근로자 비중은 37.8%로 22개 회원국 중 가장 높았다.

통계청과 여성가족부의 보고서는 여성 비정규직 숫자의 증가가 육아, 출산으로 장기간 경력이 단절된 뒤 노동시장에서 차별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나랑 사귀면 정규직 시켜줄게”…여성만의 고충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고충은 또 있다. 여성 근로자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에 큰 격차를 보였다. 지난 7월 한국보건사회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상용 육아휴직 사용률은 46.9% 였다. 반면 임시일용근로자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1.9%에 그쳤다. 이는 임시·일용직 여성이 출산하면 직장을 그만두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팽배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희롱을 가장 많이 당하는 사람도 비정규직 여성이다. 지난 4월 여성가족부가 민간·공공기관 1600곳 7844명을 대상으로 조사,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30대 비정규직 여직원들이 직장 내 성희롱을 가장 많이 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희롱 피해경험자의 78.4%가 성희롱 피해에 대처하지 않고 ‘참고 넘어갔다’고 답했다.

여성민우회 노동상담사는 “육아휴직은 계약직에게도 법적으로 보장돼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며 “여성 계약직이 육아휴직을 쓰겠다고 하면 사용자 측은 이를 거부하고 아예 나가라고 하거나, 육아휴직을 주는 대신 돌아오지 말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직장 내 성희롱의 경우, 가해자는 대부분 피해자보다 직급도 높고 직장 내 네트워크도 갖춘 남성”이라며 “남성이 정규직 전환이나 상여금을 더 준다는 조건을 제시하며 여성에게 성적 제안을 하는 사례들이 빈번하다”고 말했다.

또한 상담사는 “성희롱이 발생해도 가해자가 직급을 이용해 자신에게 유리한 소문을 퍼트린다”며 “동료들도 ‘계약직은 회사에 오래 있을 사람이 아니다’는 인식에 피해자를 도와주려 나서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시간선택제 일자리’ 정규직과 다를 바 없다더니…대부분 2년 계약직

정부가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를 위한 해결책을 내놨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시간선택제 일자리’ 제도를 들 수 있다.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일·가정 양립을 위해 기존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제도다. 정부는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근무시간만 짧을 뿐 정규직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해왔다. 또 이 제도를 통해 고용률 70% 달성을 할 수 있을 것이라 홍보했다. 지난 2013년 말 삼성, 한화, 지에스 그룹 등 10대 그룹은 시간선택제 일자리 1만 개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시간선택제 일자리 사업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일자리에 집중됐다. 가장 많은 규모인 6000명을 뽑기로 한 삼성그룹을 비롯, 대부분 대기업은 2년 계약직 형태로 근로자를 채용했다. 이들 대기업은 최저임금 130%(중소기업은 120%) 이상의 임금, 무기계약직, 주 15~30시간 노동 등의 정부 지원 요건을 맞추지 못해 지원금을 받지 못했다. 가장 많은 지원금을 받은 기업은 대기업에 인력을 공급하는 파견, 도급업체들이었다.

또 시간선택제 근로자를 채용해야 한다는 이유로 기존의 계약직 근로자를 해고한 사례도 있었다. 정부 산하 공공기관에서 2년 동안 근무한 전모(54·여)씨와 그의 동료 2명은 이달 무기계약직 전환을 앞두고 해고당했다. 사측은 ‘시간제 근로자를 써야 해서 전환이 어렵다’고만 말했다. 실제로 3명의 계약직이 나간 뒤, 회사는 시간선택제 4명 채용 공고를 냈다. 전씨는 “계약직을 자르고 시간선택제 근로자를 고용하는 게 여성을 위한 ‘일·가정 양립’ 정책인가”라고 반문했다. 

 정부 “수요도 많고 양질 일자리 확산에 도움”…전문가 “경력 단절 예방이 중요”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정부는 무기계약 등 조건을 충족하는 기업에만 재정 지원을 하고 있다”면서 “그렇지 않은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정부와 관계없다”고 선을 그었다.

관계자는 “이 제도는 ‘경단녀’ 재취업과 양질 일자리 확산에 도움이 많이 되고 있다”며 “특히 전일제 근로자가 일정 기간 근로시간을 단축해 근무하는 전환형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기혼 여성들의 수요가 많다”고 설명했다.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기존의 계약직 근로자를 해고하는 등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파악된 바 없다”고 답했다.

전문가는 여성 경력 단절을 처음부터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한림대 사회학과 신경아 교수는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듣기엔 좋지만, 현실적으로 여성들이 쉽게 신청 할 수 없다는 어려움이 따른다”면서 “시간선택제 근로자는 조직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다. 주변 동료나 상사들이 ‘일을 반만 한다’고 눈치 주면서 자연스레 승진 등에서 제외되고 주변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실제로도 전일제에서 시간제로 가기는 쉽지만 이후 다시 전일제로 돌아오지 못하고 낙오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신 교수는 “노동개혁 등 대기업 중심적인 정책을 펼치면 가장 먼저 낙오되는 자는 바로 여성”이라면서 “정부는 여성 경력 단절 예방에 주력하거나 기업이 정규직 일자리를 비정규직으로 대체하는 것을 감시하는 등의 행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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