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민수미, 정진용, 이소연, 심유철 기자] 5일 고(故) 백남기 농민의 발인식이 치러졌다. 사망한 지 41일 만이다.
이날 오전 8시 서울 종로구 혜화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생명과 평화 일꾼 고 백남기 농민 민주 사회장’ 발인식이 진행됐다.
이른 주말 아침에도 불구하고 접객실과 장례식장 입구는 백씨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려는 이들로 붐볐다.
이날 오전 7시55분 고인의 관이 빈소를 나오자 그 뒤를 가톨릭 사제와 백씨의 유가족이 뒤따랐다. 수 백 명의 시민도 함께했다.
백씨의 시신은 3층 빈소에서 지하 1층 안치실로 이동됐다. 이후 진행된 출관 미사는 시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뤄졌다. 이 중 눈물을 흘리거나 함께 기도하는 이들도 있었다.
시신은 장례식장 입구에 마련된 운구차에 올라 장례미사가 거행되는 명동성당으로 향했다.
백남기 투쟁본부 관계자와 유가족들은 지지해준 시민에게 감사를 표했다.
백씨의 장녀 백도라지씨는 편지로 “이제야 아버지의 장례를 모실 수 있게 되었다”면서 “지금까지 마음을 모아주시고, 손잡고 싸워주신 국민들 덕분”이라고 전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김영호 의장은 “뻔한 사실을 1년간 은폐하고 조작하려 했던 공권력으로부터 국민이 승리한 것”이라며 “부검영장 집행을 위해 경찰 3600명이 동원됐을 때, 시민들이 한걸음에 달려와 백 농민을 지켜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40여일간 빈소에서 시민지킴이 활동을 해왔던 이명수(37·여)씨는 “좀 더 편히 보내드렸어야 하는데 죄송하다”면서 “늦은감이 있지만 백 농민을 이제라도 장례 절차를 진행하게 돼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고 털어놨다.
먼 길을 마다 않고 온 시민도 있었다.
충남 논산에서 전날 밤 상경했다는 오윤석(50)씨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쓰여야 할 국가권력이 거꾸로 국민을 죽이고 폭력을 행사하는 데에 쓰이는 이것을 보고 분노했다”면서도 “국민이 끝까지 싸워 이겨 기쁘다”고 말했다.
가톨릭 농민회 정현찬 회장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면서 “투쟁본부란 이름 그대로, 책임자를 처벌할 때까지 국회에 특별검사 수사를 압박하는 등 투쟁을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오전 11시30분 고인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종로구 르메이에르 빌딩 앞에서 노제가 열린 뒤, 오후 2시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영결식이 거행된다.
다음날인 6일 백씨의 고향인 전남 보성역에서 노제를 치르고 광주 금남로로 이동, 2차 노제를 진행한 뒤 망월동 5.18 구 묘역에 안장될 예정이다.
고인은 지난해 11월14일 민중총궐기대회에 참석했다가 경찰이 직사한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317일간 사경을 헤매던 그는 지난 9월25일 끝내 숨졌다. 경찰은 두 차례 부검영장 강제집행을 시도했다. 그러나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경찰서는 영장 집행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과 불상사가 우려된다며 “부검 압수수색검증 영장을 재신청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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