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우리가 보통 연동형 비례제로 부르는 독일식 선거제도는 정당이 유권자로부터 얻은 득표율만큼 의석을 가져가는 시스템이다. 우리의 선거제도가 거대정당의 과대대표를 구조적으로 보장해주는 다수대표제 위주의 불공정한 방식인데 반해, 독일식은 모든 정당의 의석점유가 득표에 비례한다.
독일식의 매력은 높은 비례성뿐만이 아니다. 의석배분방식을 보면 지역구선거의 인물대표성과 비례대표의 비례성을 각각 극대화시키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비례대표선거로는 정당의 의석수를 정하고, 당선인은 소선거구 최다득표자로 채운 후 남는 의석은 비례대표가 된다.
만약 지역구당선인의 수가 정당에 할당된 의석수보다 많을 경우 모두 초과의석으로 인정하되,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불비례를 보정의석으로 교정해준다. 거대정당이 득표한 것보다 많은 의석을 받았다면 군소정당에게 그 비율만큼 의석을 추가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독일식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개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초과의석과 보정의석을 허용하면서 의원정수가 향후 상당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내년 총선 후 650석 내지 700석까지도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올해 4월에는 연방하원의장이 의원정수의 상한선을 630석으로 명시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기본 의원정수 598석에서 32석까지만 의석증가를 허용하는 것이다.
의석증가의 원인은 초과의석에도 있지만 그보다는 기사당(CSU)의 과대대표 현상이 크게 작용한다. 기사당이 득표보다 의석을 많이 얻어 그만큼 다른 정당에 보정해줘야 하는 의석수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의석증가는 그 자체로 비례성의 저하를 의미하지만 주별 인구대표성의 훼손을 초래하기도 한다. 선거 전에 개별 주별로 인구수에 비례해 할당된 의석수는 선거 후 의석증가로 인해 달라진다. 의석증가분이 많을수록 주별 인구대표성의 불균형도 그만큼 커질 수 있다.
물론 독일식을 한국에 도입했을 때 독일 수준의 의석규모로 증가한다고 예단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독일에서 의석증가의 주된 요인인 ‘기사당 현상’이 한국에서는 나타날 확률이 낮다. 그러나 독일과 달리 우리의 경우에는 비례의석의 비중이 매우 낮다. 이것은 초과의석을 대거 발생시키는 요인이 된다. 실제로 현행 비례의석의 비율로 독일식을 대입하면 초과의석이 무려 63석이나 발생한다.
현재 독일에서는 의석증가를 억제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궁구되고 있다. 비례의석의 비중을 늘리거나 의석배분방식이나 당선인 결정방식의 변경, 중선거구제와 결선투표제 도입을 통해 초과의석의 발생빈도를 낮추는 방안이 있다. 심지어 투표방식을 개방형 비례제나 선호투표제로 전환하거나 연동형을 포기하고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독립적으로 선출하는 병립형과 같은 혁신적인 방안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들 중 독일에서 현실적으로 검토될 수 있는 대안은 제한적이다. 독일은 비례제로 정해진 의석수 안에서 당선인을 채우는 방식의 ‘인물화된 비례제(personalized proportional representation)’의 특성을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선거제도의 큰 틀을 바꾸기보다는 의석확대를 최소화시키는 방안에 관심을 보인다.
그런 점에서 연방하원의장의 개선안과 같이 연동형 안에서 의석수 증가만 억제할 수 있는 방안들이 집중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연동형을 유지하는 한 의석증가를 완벽히 차단할 수 있는 방안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인물대표성과 비례성이라는 상충적 특성을 연동시키면서 의석증가를 피할 수 있은 방법은 없다. 반대로 연동하면서 의석수를 유지시키려고 하면 인물대표성이나 비례성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연동형 중에서도 헝가리나 과거 이탈리아와 같이 ‘약한’ 연동형은 의원정수의 변동은 없지만 비례성이 미약하게 나타난다.
대안은 개방형비례제
독일에서 논의되고 있는 개선방안 중 주목할 만한 대안이 있다. 바로 유권자가 비례대표를 직접 선출하는 개방형 비례제다. 개방형 비례제는 독일식처럼 인물화된 비례제이지만 두 가지 특성을 동시에 구현할 수 있다. 독일식의 경우 비례성 속에서 인물대표성이 외재적으로 표출되는 방식이라면 개방형 비례제는 비례성에 인물대표성이 일체화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개방형 비례제와 달리 독일식에서만 초과의석이 발생하는 것이다.
개방형 비례제는 비례대표제이지만 일정한 지역적 단위를 기초로 주민이 직접 선출하기 때문에 인물대표성도 띤다.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와 같은 개방형 국가들에서 비례대표가 인물대표성을 갖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유권자의 표가 정당의 의석결정에 누락 없이 전부 반영되기 때문에 비례성도 높고, 당선인도 유권자의 지지에 비례해 정해진다. 다만 인물중심의 선거경향이나 정당기능의 약화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또 권역 설정이나 당선인 결정방식 등도 중요하게 논의돼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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