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정우 기자] 삼성전자가 ‘갤럭시 노트7’ 발화 사건의 원인이 배터리에 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면서도 배터리 제조사에 법적 책임을 묻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수조원대에 달하는 손실액을 생각하면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지난 23일 삼성전자의 갤럭시 노트7 검증 결과 발표 자리에는 수많은 국내외 취재진이 몰렸다. ‘세계 1위’ 스마트폰 사업자의 제품 결함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어떤 태도로 나올지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반영된 것이다.
이날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 고동진 사장은 배터리 공급사에 법적 책임을 물을 계획이 있는가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최종적 책임을 져야하는 세트(완제품) 제조사로서 어떤 부품이 들어오든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포괄적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고 통감한다”며 “(협력사에) 어떤 법적 책임 묻는 것은 옳지 않다”고 답했다.
삼성전자가 수조원의 리콜 비용과 판매 기회비용, 브랜드 이미지 실추 등을 떠안았다는 점을 감안해 “참으로 ‘대인배’ 다운 결정 아닌가”라는 우스갯소리부터 “삼성전자도 말 못할 잘못이 있기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은 아닌가”하는 반응까지 나왔다.
무리는 아니다. 이날 발표는 삼성전자 자체 조사와 3개 해외 기관의 독립 검증을 종합해 도출된 것으로 부품부터 설계, 물류까지 전 과정의 변수 검증 결과 완제품 구조와 상관없이 배터리에 독립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결론을 낸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사후 검증을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넘어가기에는 책임 소재가 너무도 분명하게 밝혀졌다.
원인으로 꼽힌 배터리의 문제를 살펴보면 갤럭시 노트7에 리튬이온 배터리를 공급한 2개 협력사 중 A사의 배터리는 ‘젤리롤’이라 불리는 구조에 제품 조립과 무관한 ‘눌림 현상’이 발생해 내부 양극재와 음극재의 단락이 일어났다. B사의 경우 초음파 융착 공정에서 생겨난 ‘돌기’가 절연테이프를 뚫고 나오거나 아예 절연테이프가 부착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 신뢰감을 더할 만큼 매우 구체적인 내용이다. 하지만 2개사 모두 세계적인 규모의 리튬이온 배터리 제조사다. 특히 B사는 연간 억대 물량의 배터리를 생산하는 업체다. 이런 배터리 제조사들이 하필이면 갤럭시 노트7에 공급한 배터리에서만 이 같은 기초적인 문제를 발생시킨 원인이 무엇인지 의문이 든다.
고 사장은 “스마트폰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1000여개 부품을 공급 받으려면 약 450개 1차 협력사와 일하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협력사 관계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단순히 삼성전자가 협력사와의 중장기적 관계 유지를 위해 책임을 떠안는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설계부터 부품 주문, 공급, 검증과 완제품 출시까지 이어지는 유기적인 관계가 핵심이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의 역할은 부품 사양 설정과 이상 여부 확인, 완제품 출시다. 여기서 ‘무리한 배터리 사양을 요구한 것은 아닌가’라는 물음이 가능하다. 제품 소형화에 적합한 크기, 사용시간 확보를 위한 용량 등이 이에 해당한다. 실제로 갤럭시 노트7에 적용된 배터리는 동급 용량의 다른 제품보다 작은 것으로 알려졌다.
배터리 제조사도 구현 불가능한 사양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기에 맡은 역할에서 문제를 발생시킨 책임은 있다. 하지만 ‘대용량’과 ‘소형화’라는 새로운 과제를 부여한 삼성전자의 설계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삼성전자가 이를 부각시키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한 부분이다.
이번 사태 진행 과정에서 삼성전자는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는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깊이 고민해 대승적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 믿는다. 빠른 리콜‧단종 결정과 철저한 조사, 이날 발표한 안정성 강화 대책에는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믿을 수 있는 브랜드로 거듭나길 바란다.
tajo@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