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개성공단 폐쇄 1년 “객공·막노동 전전…최순실 개입 의혹 배제 못해”

[인터뷰] 개성공단 폐쇄 1년 “객공·막노동 전전…최순실 개입 의혹 배제 못해”

기사승인 2017-02-09 13:19:01 업데이트 2017-02-10 10:14:11

[쿠키뉴스=이소연 기자] 개성공단이 문을 닫은 지 10일로 꼭 1년이 된다. 스산해진 대북관계만큼 공단 관계자들의 삶에도 칼바람이 몰아쳤다.  

난해 정부는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제재로 개성공단을 폐쇄를 결정했다. 경제적 측면에서 압박을 꾀한 것이다. 북측 근로자 5만300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러나 피해를 본 것은 북측만이 아니다. 개성공단근로자협의회(근로자협의회)에 따르면 가동중단 직전 공단에는 124개 기업이 입주, 직·간접적으로 고용된 남측 근로자 수는 2000여 명이었다. 폐쇄 후 다수의 기업이 문을 닫았고, 남측 근로자 역시 실업 상태에 내몰렸다. 

지난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내 개성공단 입주기업 비상대책위원회 사무실에서 근로자협의회 이혁(56) 사무분과장과 홍재왕(54) 홍보부장을 만나 지난 1년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최근 생계는 어떻게 유지하고 있나.

이혁 사무분과장(이하 이) :  지난해 2월 개성공단 폐쇄 후, 회사가 문을 닫았다. 6개월간은 정부의 고용유지 지원금을 받았다. 일자리를 구하려 했으나 잘 풀리지 않았다. 현재까지도 구직 중이다. 국가에서 준 위로금으로 생계를 꾸려왔다. 다만 앞으로의 생활이 막막하다    

홍재왕 홍보부장(이하 홍) : 공단 폐쇄와 동시에 일자리가 사라진 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7월부터 구직활동을 했으나 채용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받아 작은 의류 가게를 하나 차렸다. 일감이 없어 벌이가 시원치 않은 상황이다. 하우스푸어가 될까 두렵다  

-개성공단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이 : 본래 의류업체 SNG라는 기업에서 사무직 노동자를 총괄하는 업무를 맡았다. 회사가 개성공단에 ‘올인’하려는 준비를 하면서, 본사에서 개성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개성에서 근무한 시간은 3년 정도다. SNG는 지난 2015년 12월 본사였던 대전공장 문을 닫고, 개성으로 완전히 이전했다. 그런데 2개월 만에 쫓기듯 나와야 했다.

홍 : 40여 년간 의류 기술자로 일했다. 지난 2015년 GS아트라인의 개성공단 생산총괄공장장으로 입사했다. 개성공단에서는 정년보다 오래 일할 수 있다기에 택한 길이었다. 내 인생의 마지막 회사라 여겼다. 1년2개월 만에 회사를 떠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개성공단에서 함께 일했던 다른 근로자들의 상황은 어떠한가.

이 : 지난해 12월 개성공단관리회에서 기존 근로자의 45%가 일자리를 구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취업이 됐다는 사람 중 다수는 다니던 공장이 문을 닫지 않아 채용이 유지된 이들이다. 재취업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한 사람은 적다. ‘객공(임시로 고용한 직공)’으로 현장에 나가 하루 이틀 일을 하거나, 막노동 등 비정기적인 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홍 : 가장이 돈을 벌지 못하니 불화 위기에 놓인 가정도 많다. 우리 나잇대는 주택 대출금, 등록금, 자녀 결혼자금 등 지출이 많은 시기다. 그런데 정부의 갑작스러운 폐쇄명령으로 근로자들의 삶은 산산조각 났다.   

-앞서 정부는 ‘개성공단 중단에 대한 보상은 끝났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확히 어떤 보상을 받았나.

이 : 정부에서 804명의 근로자에게 고용유지지원금을 6개월간 월 194만원씩 지원했다. 다만 이는 기존 고용보험에서 나오는 금액에 남북협력기금 65만원씩을 더한 것뿐이다. 개성공단 근로자를 위해 정부에서 특별히 지원한 것은 월 임금 6개월분(1716만원)의 위로금이 전부다.

-근로자협의회에서는 공단 내 남측 근로자 수를 2000명으로 발표했다. 804명만 지원을 받은 이유는 무엇인가.

홍 : 일주일에 3일 이상 개성 땅을 밟고 일했던 사람들에게만 혜택을 줬다. 그러나 지방에 위치한 기업들은 서울에 사무소를 차려 직원을 상주시켰다. 이들은 일주일에 단 하루만 개성에 들어왔다.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제품을 옮기던 물류기사 중에서도 일주일에 3일 이상 개성에 들어간 사람만 포함됐다. 하청업체 소속으로 간접 고용된 근로자는 지원에서 배제됐다. 제품 검사원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정부 쪽에서 재취업 관련 대책을 마련해준 것은 없나.

이 : 정부에서는 업종 변환과 창업을 독려했다. 그러나 이 나이에 업종을 바꾸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창업하라는 것도 치킨집을 차리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대출에서 혜택을 줄 것처럼 이야기했으나, 이자가 3%대였다. 시중 금리와 큰 차이가 없다. 이 정도의 대책은 내가 혼자 구청 문을 두드려도 얻을 수 있다.

홍 : 푸드트럭을 허가해주겠다는 논의가 오간 적 있다. 그러나 현실성 없는 대책이었다. 정부의 푸드트럭은 유동인구 등을 고려해 지정된 곳에서만 장사할 수 있다. 이미 목이 좋은 곳은 포화 상태다. 유동인구가 없는 곳에서 장사를 하는 것은 안 하느니만 못한 일이었다. 결국 논의는 무산됐다.

-이미 충분한 혜택을 준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개성공단 근로자에게 추가 지원이 이뤄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홍 : 우리가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은 정부가 갑작스럽게 폐쇄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회사의 잘못이 아니다. 당시 개성공단 내 기업의 매출은 상승세를 보였다. 건실한 직장을 하루아침에 없어지게 했으면 그에 상응하는 대책을 세워줘야 한다. 심지어 우리가 1인 시위 등으로 목소리를 내기 전까지는 아무런 지원이 없었다.

-현재도 정부를 상대로 투쟁을 이어가고 있나.

홍 : 근로자협의회는 사실상 문을 닫은 상태다. 국가배상청구소송 준비도 무산됐다. 변호사는 정부의 위로금을 받으면 소송을 진행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당장 생활이 급급하던 근로자들은 소송보다 위로금을 택했다. 이후 근로자들이 전국 각지의 연고지로 흩어지며 의견 취합도 어려워졌다. 

-시국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자.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태로 나라가 들끓고 있다. 지난해에는 최씨가 개성공단 폐쇄 지시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 : 최씨가 베트남에 사업을 투자하려고 개성공단을 폐쇄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최근 사태를 보면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공단 폐쇄 후, 정부는 기업에 개성의 대체생산지로 베트남을 제안했다. 최씨의 존재가 드러나기 전에도 공단 폐쇄가 ‘정식 라인’의 의견이 아니라는 생각은 했다. 폐쇄 직전 회의에 들어갔던 관계자에 따르면 홍용표 통일부 장관도 몰랐던 일이라고 했다.

-지난 2013년에도 남·북한의 마찰로 약 5개월간 공단이 폐쇄됐었다. 

이 : 2013년에는 폐쇄가 그나마 순차적으로 이뤄졌다. 기업에도 공단 내 물품을 정리할 시간을 줬다. 지난해처럼 몸만 나온 기업은 없었다. 당시 윗선의 의사결정과정은 박근혜 정부 때와 확실히 달랐다.

-정부, 특히 개성공단 폐쇄를 결정한 박 대통령에 대한 원망이 클 것 같다. 

이 : 내 목을 자른 사람이다. 개성공단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나길 바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한 것은 까맣게 잊은 것 같다. 

홍 : 개성공단을 떠나서 요즘에는 뉴스를 보면 뭐든 부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현재까지 나온 의혹들을 보면 막말로 누군가의 지시에 따른 로봇이지 대통령이라고 할 수 없다.

-당시 개성공단은 ‘북한의 핵 개발 자금줄’로 지목됐다. 이러한 의혹에도 불구, 공단을 재개해야 할 필요성이 있나?

홍 : 남·북 합작공단이 북측에 몇 개만 더 생긴다면 지금 주는 압박보다 외려 더 큰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남측 경제와 공생관계가 되면 북한도 쉽사리 도발을 가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기업의 입장에서도 동남아 지역보다 개성에 공장을 차리는 것이 경쟁력 있다.

이 : 실업난에 시달리는 근로자들에게 제대로 된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꼭 필요하다. 이는 북측 근로자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지난 2013년 폐쇄 후, 돌아온 북측 근로자들의 체중이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이유를 물으니 ‘살 깎기(다이어트)’를 했다고 하더라. 북한에서 미의 상징은 통통함이다. 다이어트를 할 이유가 없다. 식량을 배급받지 못 해 살이 빠진 것 같았다. 

-차기 정권에서 공단이 재개될 것이라고 보나.

이 : 개성공단에 호의적인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올해 안에는 재개가 어렵다고 본다. 그래도 누가 되든 박 대통령 때보다는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홍 :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삼엄해진 상황에서 재개를 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근로자의 삶은 더욱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 지난 1년은 참 힘들었던 한 해였다. 앞으로는 더욱 힘든 시간이 될 것이다. 

soyeon@kukinews.com / 사진=박효상 기자, tina@kukinews.com

이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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