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소연 기자] 세월호가 참사 1081일 만인 31일 뭍으로 올라온다. 세월호 선장과 선원 등은 중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구조 책임자 중 실형을 선고받은 이는 단 한 명이었다. 유병언 일가 역시 법망을 피해갔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이 규명되면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이들에게 다시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 승객 버리고 탈출한 선장·선원, 무기징역 등 중형 확정
지난 2014년 4월16일, 이준석 선장과 일부 선원 등은 가라앉는 세월호를 등지고 탈출했다. 퇴선 명령은 없었다. 다만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만이 승객에게 전달됐을 뿐이다. 배에는 아직 304명이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지난 2015년 11월12일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선장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당시 대법원은 “익사할 수밖에 없음을 충분히 예견했음에도 퇴선 조치를 하지 않고 내버려 둔 채 먼저 배에서 내린 것은 승객들을 적극적으로 물에 빠뜨려 익사시키는 행위와 다름없다”며 이 선장의 살인죄를 인정했다. 대법원은 이 선장의 살인미수와 업무상과실선박매몰(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선박), 선원법·해양관리법 위반 혐의 등도 유죄로 판단했다.
이 선장과 함께 도주한 선원들 역시 참사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같은 날 대법원은 1등 항해사 강모(45)씨와 2등 항해사 김모(54)씨, 기관장 박모(57)씨에게 유기치사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강씨는 징역 12년, 김씨는 7년, 박씨는 10년형을 확정받았다. 3등 항해사와 조타수·기관사 등 나머지 승무원 11명도 유기치사, 유기치상, 수난구호법 위반 혐의 등이 인정돼 징역 1년6월에서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중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은 선원 2명은 복역을 마치고 출소한 상태다.
▲ 청해진해운 대표, 징역 7년형…실소유주 유병언 일가 대부분 ‘도피’
참사의 책임은 세월호를 관리·운영한 선사에도 있었다. 세월호 침몰과 관련 수사를 진행한 검찰은 선사였던 청해진해운의 무리한 증축과 과적을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했다.
대법원 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2015년 10월29일 업무상과실치사와 선박매몰·선박안전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한식 청해진해운 대표에게 징역 7년에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1심을 맡았던 광주지법 제13형사부(부장판사 임정엽)는 “세월호 증·개축을 주도해 복원성이 약화되게 하고 과적과 부실고박 문제를 보고받고도 시정하지 않았다”며 “회사자금 횡령과 배임 등으로 선사의 자금난을 가중시켰고 나이 많고 무능한 선장과 선원을 채용했다. 과적과 부실고박이 계속되게 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김 대표와 같은 혐의로 기소된 청해진해운 임직원 4명과 세월호의 화물 고박작업을 맡았던 우련통운 관계자 등도 금고 2~4년의 유죄가 확정됐다. 금고는 징역형과 달리 형무소에 가두되 노역을 시키지 않는다.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였던 고(故) 유병언 세모그룹 회장 일가에 대한 심판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에 따르면 고 유 회장은 세월호의 과적 운항을 묵인 또는 지시했다. 검찰의 수사망을 피해 도피생활을 해오던 고 유 회장은 지난 2014년 6월12일 전남 순천의 한 휴게소 인근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같은 해 7월22일에야 “해당 변사체가 고 유 회장의 DNA와 일치한다”고 발표했다.
프랑스에 머물고 있는 고 유 회장의 장녀 유섬나씨는 “한국에서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없다”며 송환을 거부하고 있다. 유섬나씨는 지난해 3월 프랑스 사법당국으로부터 송환 명령을 받았으나,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하는 등 지연작전을 펼치고 있다. 또 다른 자녀인 유혁기씨와 유성나씨의 행방은 파악조차 되지 못한 상태다.
고 유 회장의 장남인 유대균씨만이 회삿돈 횡령 등의 혐의로 2015년 10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을 확정받았다. 손해배상도 미미했다. 법원은 지난 2월 그에게 세월호 참사 수습비용으로 7576만원을 정부에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정부가 그에게 청구했던 비용은 35억4000만원이었다.
▲ 구조책임자 처벌 미흡…123정장 3년형·VTS 센터장 등은 ‘무죄’
해양경찰(해경) 등의 부실한 대응도 사고를 참사로 키운 원인 중 하나였다. 해경 123정은 참사 당일 오전 9시34분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사고가 발생한 지 45분이 지난 후였다. 선체가 이미 50도 정도로 기울어 긴급한 구조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해경은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오전 9시49분 배가 급격히 기울자 대원 1명을 진입시켰으나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다. 적극적인 승객구조나 퇴선유도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 자력으로 선체를 빠져나온 일부 승객을 ‘건져’ 구명정에 태웠을 뿐이다.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2015년 11월27일 업무상과실치사·상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경일 전 해경 123정 정장에게 징역 3년형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세월호 참사 당시 123정 승조원 임무배치를 소홀히 한 과실과 세월호 승객에 대한 퇴선 유도, 123정 방송장비를 이용한 승객퇴선 유도 등을 소홀히 한 과실이 인정된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세월호의 이상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한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 센터장과 직원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이들은 참사 당일 관제 업무를 소홀히 해 직무상 의무를 저버린 혐의를 받았다. 야간근무 시간대에 1명의 관제요원에게 모든 업무를 맡기고 나머지 관제요원들은 휴식을 취하는 방식으로 변칙 근무한 것이다. 세월호가 급변침한 순간 ‘이상 항적’이 뚜렷하게 레이더에 포착됐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대법원은 “징계의 대상일 뿐 직무를 유기하거나 의식적으로 포기한 행위라고 볼 수 없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무너진 컨트롤타워…‘해경 해체’로 책임 떠넘겼던 청와대
정부 역시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국가재난의 ‘컨트롤타워’인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오전 10시에야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사고 상황을 서면으로 보고했다. 국가안보실 산하의 위기관리상황실은 촌각을 다투며 구조업무를 해야 할 해경에 현장 영상을 보내라고 주문했다. 구조보다 ‘보고’에 집중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최고 책임자인 박 전 대통령이 참사 후 약 8시간이 지난 뒤에야 모습을 드러낸 점도 문제였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에 보고를 받은 후 5~10분 간격으로 국가안보실과 해경, 청와대 사회안전비서관 등에게 적절한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방문한 시각은 같은 날 오후 5시15분이었다. 무려 7시간이나 되는 공백이 발생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해경에게 물었다. 세월호 참사 한 달 뒤인 2014년 5월19일 “고심 끝에 해경을 해체하기로 결론 내렸다”고 발표했다. 안전행정부도 행정자치부·국민안전처·인사혁신처로 쪼갰다. ‘보여주기식’ 개편이라는 지적이 일었다.
청와대는 스스로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최선을 다했다”며 참사 당일 7시간 행적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 참사 당시 국가안보실을 총괄했던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은 경질됐으나 지난해 10월 주중 한국대사로 임명, 다시 요직을 차지했다.
국회는 ‘세월호 참사 관련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박 전 대통령을 탄핵 소추했으나, 헌법재판소는 이를 탄핵 사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이진성·김이수 헌법재판관은 보충 의견을 통해 “(박 전 대통령이) 지도력을 발휘하지 않고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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