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영수 기자] 2000년 12월, 사거리 신호등 색깔이 바뀌는 찰나에 내 운명도 함께 바뀌었다.
당시 병원에 근무했던 나는 경남 통영에서 의령으로 가는 앰뷸런스 조수석에 타고 있었다. 토요일 오후 알코올중독 환자의 이송을 위해 갔다가 돌아오던 중 고성 부근에서 승용차와 충돌하는 교통사고가 일어났다. 그 사고로 목뼈가 부러지면서 중추신경이 손상되어 사지마비 장애가 찾아왔다.
진주의 한 대학병원으로 후송되어 곧바로 여덟 시간에 걸친 수술을 하고 한 달 동안 집중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다시 서울의 유명 대학병원의 재활병원에서 2개월 동안 재활치료를 했다. 척수 손상의 후유증은 단순한 마비뿐 아니라 엄청난 통증까지 수반하였다. 견딜 수 없는 통증으로 인해 처음에 수술 받았던 진주의 대학병원에 입원해 9개월 동안 치료를 받고서야 퇴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병원에서 퇴원하면 모든 게 끝날 줄 알았는데 삶과의 전쟁이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모든 게 불편했고 환경은 걸림돌로 가득했다. 어느 것 하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아내한테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다. 아내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병원에서 했던 것처럼 관절운동을 시키고, 옷을 입히고, 세수 시키고, 밥 먹을 땐 반찬을 올려주고, 이동할 때도 밀어줘야 했다.
이처럼 내 장애로 인해 아내는 자신의 인생을 도둑맞고 말았다. 오롯이 24 시간을 내 손발이 되어주느라 자신의 삶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장애가 있는 나보다 더 많은 병을 얻었고 지금은 약 없이는 삶을 견뎌내기 힘들어한다. 병원에서 환자들끼리 ‘한 가정에 장애가 심한 사람이 있으면 삼대가 고통 속에 산다’고 했던 말이 꼭 맞다.
그래도 나는 장애수용이 빠른 편에 속한다. 입원 기간도 사지마비 척수장애인의 평균보다 짧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곧바로 사회활동을 시작했다. 지역사회에 살고 있는 척수장애인 모임인 ‘푸른 날개‘에 가입해 리더로 활동했고, 그 모임을 활성화시켜 지금의 경남척수장애인협회와 진주지회를 창립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경남장애인탁구협회와 진주장애인탁구협회를 창립해 장애인스포츠 저변확대에 기여했다는 자부심도 가지고 있다.
그렇게 좋은 날이 지속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마음속에는 언제나 앞날에 대한 불안이 사라지지 않았다. 장애로 인한 열등감이 무의식 깊이 존재했었나 보다. 남에게 차별과 무시를 당하지 않으려면 돈이라도 많아야 된다는 생각에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말았다. 2008년 세계가 금융 위기 사태를 맞았을 때, 나는 주식투자로 가진 것을 모두 잃고 빚더미에 앉고 말았다.
장애에 가난까지 더해지자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식구들 몰래 했기 때문에 책임감 없는 가장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하루하루 갈등의 연속이었고 이혼의 위기도 있었다. 다행히 식구들이 잘 견뎌주어 모든 난관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아내가 읽어보라며 던져준 책은, 절망의 수렁에 빠진 나를 건져내고 내 삶을 서서히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책을 읽으며 배움에 대한 갈망이 생겼고 나이 오십에 꿈과 희망을 갖게 되었다.
이후 나는 배움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 다녔다. 평생교육원에서 하는 ‘스피치’ 교육과 경상남도척수장애인협회에서 실시한 동료상담가 교육, 장애 인식 개선 강사 교육도 받았다. 무엇이든 시작하면 전문성을 가질 때까지 해야 한다는 게 나의 신념이다. 지난 삼 년 동안 천 권의 책을 읽었고, 글쓰기를 배우면서 지난해에는 ‘걸을 수만 있다면’ 시·수필집을 공동 출간하기도 했다. 요즘은 진주에서 대전을 오가며 책 쓰기 코칭을 받고 있는데, 5~6월에는 출판계약을 맺을 예정이다.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재활지원센터에서 진행한 척수장애인 활동가 교육도 이수했다. 이 교육은 척수장애인으로 살아가는 나에게 많은 지식과 정보를 주었다. 일상에서 닥칠 수 있는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의료 지식과 각종 사건 사고로 불이익을 받았을 때 대응할 수 있는 법률 상식, 장애인 당사자로서 가져야 할 주체의식, 보장구의 보험 확대 정보 등 척수장애인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 교육을 이수한 후, 2016년부터는 정보메신저로 활동하고 있다. 재활병원에 있는 초기 또는 장기입원 척수손상 환자를 찾아가 다양한 정보와 상담을 제공하는 역할인데, 교육과 경험을 통해 쌓은 지식을 다른 척수장애인에게 넘겨준다는 것이 얼마나 보람되고 가치 있는 일인가.
나는 장애를 입기 전 병원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내과, 외과, 정형외과, 비뇨기과, 임상병리실에서 사무장과 팀장으로 일하면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이 많다. 특히 원무과에서는 산재업무를 담당한 덕분에 요즘 병원에 나가 대상자를 만났을 때 이 분야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다양한 정보와 상담을 제공할 수 있다. 중도에 장애를 입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내가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어 참 행복하다. juny@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