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송금종 기자] 은행거래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고유 ‘계좌’가 있다. 그 중에는 거래가 잦은 주거래 계좌가 있는 반면에 한동안 거래가 뜸했거나 잔액이 0원에 가까운 계좌도 있을 것이다.
은행권에 따르면 5년 이상 무거래 0원 계좌는 총 2200만개다. 지난해 12월부터 시행된 은행권 계좌통합관리서비스로 계좌 잔고이전과 해지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가입 했어도 거래 없이 형태만 있는 계좌가 수십만 개에 이른다.
이런 계좌는 폐기해버리는 게 순리가 아닐까 생각할 수 있다. 금융거래가 없는 사실상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깡통’ 계좌를 은행이 굳이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행들은 이 계좌를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유가 뭘까.
바로 소비자와 맺은 계약 때문이다. 계좌 해지 권한은 오로지 소비자에게만 있다. 따라서 계좌 주인이 직접 해지를 요청하지 않은 이상 그 계좌는 평생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만일 은행이 자의적으로 계좌를 폐기할 경우 소비자는 약정서를 근거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는 계좌를 폐기하면 가입한 고객 정보도 함께 삭제되기 때문이다. 몇 바이트에 불과한 정보라도 잠재적 고객으로서 가치가 있기 때문에 계좌를 무조건 계좌를 없애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은행들도 잠재적 고객인 이들이 언제든 계좌를 쓸 수 있도록 두는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초기 개설비용과 전산비용을 제외하고는 유지하는 데 전혀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에 이런 계좌를 사실상 방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0원 계좌가 무분별하게 늘어나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송금 계좌를 잘못 입력해 타인에게 돈을 입금하는 착오송금을 일으킬 수 있고 대포통장처럼 금융사기에 활용될 수도 있다.
0원 계좌를 정리할 수 있는 키는 소비자에게만 있다. 대대적인 캠페인을 통해 계좌를 해지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하지만 대부분 소비자들이 이런 계좌를 확인조차 안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은행이나 정부에서도 계좌를 처분할 의지를 찾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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