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양균 기자] 소설 ‘1984(조지오웰)’ 속 독재국가 오세아니아는 ‘신어(Newspeak)’라는 공용어를 쓴다. 신어는 정확한 전달에 극대화된 언어다. 은유와 함의, 중의와 간접 표현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사상과 상상이 끼어들 틈이 없다. 이러한 소설의 설정은 언어결정론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이것은 언어가 의식과 사고, 세계관을 결정한다는 견해로, 현재는 부정된 개념이다. 말이 사고를 지배하진 않더라도 말이 사고를 반영한다는 건 특히 황우석씨의 말을 보면 더 확실해진다.
“이미 여러분께서 아시는 바와 같이 테라토마 사진에서 결정적인 실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진촬영에서도 돌이킬 수 없는 인위적인 실수가 있었습니다.” “대안적 사실을 준 것이다. 거짓이 아니다.”
앞은 지난 2005년 12월 16일 황우석 박사가 줄기세포 논문을 철회하며 한 말이다. 뒤는 1월22일 미국 백악관 켈리앤 콘웨이 선임고문이 숀 스파이서 대변인의 거짓말을 두둔하고자 한 말이다. 말장난에 불과한 이러한 말은 진실을 감추고 책임을 면피하고자 내뱉은 불확실한 단어의 조합일 뿐이다.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황우석씨에 대한 기억도 대개 그렇다. 황우석씨는 말을 잘했다. 언론 앞에서 그는 막힘없이 말을 했다. 말은 말이되 말 같지 않은 말이 늘 그의 혀에서 나왔다.
“강원래군을 벌떡 일으켜 이제 과거 보여주셨던 그 날렵한 솜씨를 다음 다음번 열린 음악회에서 다시 보여주길 바랍니다. 강원래씨가 휠체어 댄스는 옛 시절을 그리며 추억의 한 작품으로 우리에게 다시 보여줄 수 있는 그날은 온 국민과 함께 같이 가고 싶습니다.” (2014년 10월 열린음악회에서 황우석 박사)
십여 년전 서울대병원 임상의학센터(현 임상혁신센터)에서 ㅅ교수와 ㅇ교수의 자리에 동석하게 되었다. 이들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기자는 ㅇ씨가 줄기세포 연구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황우석 논문 파문이후 함께 중징계를 받은 ㅇ씨의 존재를 확인한 건 나중의 일이다).
황우석씨는 참여정부를 대표하는 과학자로 그 위세가 대단했다. 영롱이를 시작으로 그는 줄곧 한 방을 노렸던 것 같다. ‘줄기세포’라는 한 방 말이다. 동종 분야의 연구자들 사이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찬사와 의혹, 성과는 있지만 논문은 없는 과학자. 그에겐 줄기세포가 있었지만 적어도 과학은 없었다.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연구에 이용되는 난자는 도대체 어디서 구할까. 동물 난자를 쓴 다해도 인간의 것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결국 사람의 난자가 ‘상당히’ 많이 필요했을 텐데…그 난자는? 연구자 몇몇과 이에 대한 토론을 한 적도 있었다. 결론은 없었다. 당시 누군가 이렇게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황우석이니까.”
황우석이니까. 그랬다. 황우석씨는 일개 과학자들이 평생 동안 한번 이룰까 말까한 연구 업적을 만들어 낸 사람이었다(적어도 당시에는 그렇게 받아들여졌다). 그만의 묘안이 있지 않을까. 황우석이니까. 당시 대부분 그렇게 믿었다.
믿음이 의심으로 바뀌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뉴스에서 난자 기증자들이 줄을 섰다는 이야기를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결코 일어나선 안 되는 비이성적인 상황이 백주 대낮에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ㅁ사 관계자의 말을 아직 기억한다. 그는 회사의 주식이 요동칠 거라고 말했다. 조만간 큰 일이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큰일은 정말로 일어났다.
이전이나 이후에도 신문 1면에 국내 과학자의 논문 게재 소식이 대서특필된 것을 본 적이 없다. 황우석씨의 네이처 논문 등재 소식을 미디어는 앞 다퉈 보도했다. 거짓말처럼 ㅁ사의 주식도 반등했다. 사람들은 기뻐했다. 난자 수급 방법은 여전히 미궁 속에 있었지만 누구도 관심 갖지 않았다. 그러나 이 질문의 답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밝혀졌다.
PD수첩이 황우석 연구팀의 불법 난자 매매를 폭로하던 날이 아직 생생하다. 난자를 돈을 주고 산 것만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여성 연구원이 난자를 기부, 스스로 자신의 난자를 연구했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 자발적인 선택이었다고는 하지만, 연구원의 생사여탈권을 쥔 PI의 암묵적 요구를 뿌리칠 수 있을 용기가 일개 연구원에게 있었을까. 이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황우석씨는 기자회견에서 예의 ‘날렵한’ 언어의 유희를 펼쳐보였다. 비루한 변명이었다. 이후의 이야기는 다들 알다시피 황우석은 몰락했다. 더 정확하게는 몰락한 것처럼 보였다.
가끔씩 궁금해진다. 황씨가 실제 줄기세포 연구에 성공했다면 어땠을까. 연구과정의 비윤리성은 국위선양과 애국심 아래 묻혔을까. 그러나 황우석씨는 아직 건재하다. 그의 제자들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논문 대신 언론 플레이를 선호하는 그의 방식도 여전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황우석씨가 공식 석상에서 한 말들을 분석하면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말은 사고를 반영한다. 대안적 사실이나 인위적 실수 같은 말의 공통점은 하나다. 진실을 숨기고야 말겠다는 의지 혹은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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