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양균 기자] 1987년 1월 14일 중앙대병원 응급실에 정체불명의 사내들이 들이닥쳤다. ‘조사받던 이가 위급하니 왕진을 와 달라’는 말에 오연상 박사(당시 32세 내과 전문의)는 왕진 가방을 챙겼다.
이들을 따라 간 남영동 대공분실에는 속옷 차림의, 전신이 물기로 흥건해 이미 숨이 멎어 있는 청년이 있었다. 고(故) 박종철 열사였다. 수사관들은 박 열사의 시신을 응급실로 옮겨가려 했다. 사망 장소를 응급실로 하려는 술수였다. 그렇게 박종철 열사의 시신은 담요에 쌓여 곧장 부검실로 직행했고 사흘 뒤 화장돼 임진강에 뿌려졌다. 공권력에 희생된 젊은 영혼의 한은강 아래로 가라앉아 버리는 듯했다.
오 박사의 증언이 실린 동아일보의 기사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6월 민주화 항쟁의 기폭제가 된 이 끔찍한 죽음의 진실은 한 젊은 의사의 입에서 시작됐다. 훗날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직접 본 것은 아니기에 ‘물고문이 있었다’고 확언할 순 없었지만 심증이 강하게 드는 상황에서 어떻게 말할지 많이 고민했죠. 일부러 물에 대한 얘기를 많이 꺼냈어요. 한 대여섯 번 했을 거예요. ‘바닥에 물이 흥건했고, 박종철 군의 온몸이 물에 젖어 있었고, 폐에서 수포 소리가 들렸다’고요. 모두 제가 본 사실 그대로였어요.”(중대신문, 2016년 5월 23일)
오 박사의 ‘사실 그대로를 말했다’는 말.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것, 증언은 ‘용기’와 ‘양심’의 발로이다. 이러한 용기는 때때로 세상을 바꾼다. 오 박사의 증언은 대중이 독재에 항거하고 이 나라에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나는 지난 15일 명실 공히 국내 최고 권위의 국립대병원인 서울대병원의 비루한 민낯을 이와 비교하여 본다.
“외인사의 직접적인 원인은 물대포인가?” “다른 원인이 있나. 그러나 병원에서 그렇다 아니다 하는 것은 비약이다. 병원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외상성 경막하 출혈로 결국 사망했고 외인사라는 것’ 까지다.”
최초 사인 정정 소식을 듣고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일말의 기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백남기 농민을 사망에 이르게 한 직접적인 원인은 물대포이다.’ 모두가 아는 이 사실을 오직 서울대병원 일부 힘 있는 이들만 모르는 모양이었다. 의료의 영역으로 사안을 축소시키고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 놓은 이들의 기만에 기자는 물론 현장의 언론인들은 몹시 분개했다. 서울대병원의 용기와 양심은 정녕 실종되어버렸는가. 언론인들의 분노가 이 정도라면 하물며 이 소식을 접한 대중의 심정이야 오죽할 것인가. 그렇지만 ‘물대포 때문이냐’는 언론의 거듭된 질문에도 진료부원장과 신경외과 과장은 ‘외상성 격막하출혈’이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이날의 ‘기자간담회’에 서창석 병원장과 백선하 신경외과 교수는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유라고 내놓은 것도 걸작이었다. ‘기자회견’이 아니고 ‘기자간담회’여서, 진료에 대한 부분을 논하는 자리여서 병원장이 입장을 표명할 이유가 없다는 게 병원 측의 해명이었다. 백 교수는 해외학회로 바쁘며 사안에 본질에서 벗어난다고도 했다.
“의사들은 보이는 것만 말해요. (물대포냐 아니냐는) 모릅니다.”
자리를 파하고 신경외과 과장이 한 언론에 이 같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귀를 의심했다. 백 농민의 죽음에 국민적 관심과 분노가 이는 것은 비단 이 문제가 의학의 범주에 국한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란 것을 이들은 모르는 것인가. 최루액을 대량 부어넣은 위험천만한 경찰의 물대포는 닿기만 해도 타는 듯한 고통을 안겼다. 이런 물대포가 백 농민의 안면을 강타하던 순간은 당시 현장에 있던 기자를 비롯해 전 국민이 보았음에도 서울대병원의 ‘의학적 소견’을 운운하고 있었다. 이들이 말하는 의학에, 인간과 진실에의 양심은 포함되어 있지 않는가.
20일 ‘외인사’로 수정된 사망진단서가 유족에게 전달됐다.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서창석 병원장은 유족에게 사과의 말 몇 마디를 전했다. 서 병원장 본인도 사망진단서 수정을 위해 노력했다는 기가 막힌 이야기가 그의 입에서 나왔다. 지난해 백 농민의 사망 이후 사망진단서 정정을 요구하는 유족에게 서 병원장이 ‘노’를 반복했음을 국민들은 기억한다. ‘영혼 없는’ 말 몇 마디가 면죄부가 될 수 없는 이유다.
“서울대병원은 대학병원이지 공공병원이 아니다. 공공성보다 연구와 학문이 우선이다. 공공병원으로 삼으로면 ‘혜화동병원’으로 간판을 내걸어라.” 이처럼 스스럼없이 말하던 서울대 모교수의 이야기는 또 어떠한가. 이는 서울대와 서울대의대, 서울대병원의 인식이 어떠한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대중의 공분과 지탄을 사고 있는 서울대병원은, 그러나 건재하다. 진실에 눈을 감고 권력과 결탁해 잇속을 챙기는 소수와 달리, 대다수의 성실하고 선량한 의료인들 덕분이다. 조직 하부에서 묵묵히 환자에만 헌신하는 의료인들. 정작 힘있는 소수는 이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서 병원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산 자의 몫은 죽은 이의 억울함을 세상에 알리는 것뿐. 아직 6월이 끝나지 않았음을 절감한다.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