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조현우 기자] 하루 평균 유통량 3000만개. 한 사람이 이틀에 한 개 꼴로 먹는 계란에서 인체에 유해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는 사실은 국민들을 막연한 공포감에 밀어 넣기 충분했다.
정부는 14일 오후 2시경 사실을 확인했음에도 이를 발표하는 데에 10시간을 소비했다. 명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해야한다는 해명이었지만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간극이었다.
정부를 비롯한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계부처는 서둘러 전국 1239개 산란계 농장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전체 1456개 농장 중 털갈이나 휴업 등의 이유로 계란을 생산하지 않는 일부 농장을 제외한 전 농가가 대상이다.
모 의원은 정부가 이를 신속하게 대응했다고 자찬했다. 그러나 이러한 ‘유래 없을 정도의 신속한 대응’은 부실조사로 빛이 바랬다. 혼란 속에서 정부와 농림부는 중요한 부분을 간과했다. 어느 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인명(人命)에 관련된 일은 ‘속도’보다는 ‘정확’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 농장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직접 농장을 방문해 임의로 샘플을 선택·수거하는 대신 마을 대표가 취합한 계란을 일괄적으로 수거해 가져갔다고 밝혔다. 실제로 살충제를 썼다고 하더라도 덜 묻거나 묻지 않은 계란을 제출한다면 해당 농가는 문제없는 농가가 된다. 당연히 출하된 계란도 표기상 ‘안전한’ 계란이 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결과 발표가 하루 이틀 정도 늦는다고 문제가 커지지 않는다. 그러나 ‘안전하다’는 정부 도장이 찍힌 계란이 사실 안전하지 않다면 이는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것보다 더욱 큰 문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 계란에 살충제가 묻어있는지 아닌지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정부의 발표를 신뢰하며, 신뢰할 수밖에 없다.
김영록 농림부 장관 역시 17일 국회상임위 현안보고에서 전수조사 표본에 문제가 있어 121곳 산란계 농장에 대한 재검사를 실시하고 있다며 사실상 부실조사를 시인했다. 이러한 부실조사는 국민의 안전을 담보로 멱살을 쥐고 흔드는 기만과 다름없다.
눈가리고 아웅 식의 친환경 인증제도도 도마 위에 올랐다. 사실상 일반 농장보다 철저해야할 친환경 무항생제 계란 농장에서 유해 살충제 성분이 무더기로 검출됐다. 친환경 농장의 경우 아예 관련 검사조차 진행하지 않았다는 말도 들려온다.
이러한 문제는 민간기관에 위탁한 인증제도에서 기인한다. 친환경 인증 책임은 농림부와 관리감독기관인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있지만 농장에 대한 인증은 민간기관에서 진행한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민간기관 업무 신뢰성에 대한 의혹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밖에 없다.
실제로 살충제 성분이 최초로 검출됐던 경기도 남양주 농장은 지난 2일 민간기관이 시행한 무항생제 적합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불과 열흘 뒤 상위기관인 농림부에서 진행한 일제 점검에서 ‘피프로닐’이 검출됐다.
결국 이번 살충제 계란 파동은 민간기관의 무책임한 인증 남발과, 상위기관인 농림부의 책임소홀이 함께 만들어낸 인재(人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