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의 실용적인 아름다움과 예술성을 지향하는 최용석 도예가. 그는 흙을 만지는 일이 순수하고 정직해서 좋다고 말한다.
경북 경주시 국립경주박물관 인근에 자리 잡은 고도세라믹스. 그의 거친 손에서 탄생한 도자기와 그의 삶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 현대미술과의 접목, 화려하고 독특한 도자기
고도세라믹스 입구에 서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푸른 논밭을 배경으로 황토집의 흙벽에는 도자기 벽화를 걸고 낮은 계단은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 토판으로 장식했다. 내공이 묻어나는 작품은 바닥에 그냥 놓여 있어도 아름답다.
그가 손수 설치했다는 가마실을 지나면 바깥 풍경이 고스란히 내다보이는 널찍한 작업실이 나타난다. 큰 유리창으로 푸른 산을 품은 작업실은 시원하고 쾌적하다.
경주에만 도자기 공방이 100여 곳 정도 되지만, 그의 작업실은 특히 도자기 마니아들에게 인기 있다. 울산, 포항, 대구, 경주에서 찾아오는 수강생이 꽤 많다.
창가 자리에서 물레질을 하며 풍경을 즐기는 그의 표정이 편안해 보인다.
오전에 도자 수업을 마친 수강생들이 가고 나면 그는 머릿속에 구상한 도자기 도안을 노트에 옮긴다. 머릿속에 완벽하게 그려져야 노트에 옮기고 작업을 시작한다.
“그동안 작업 구상을 남긴 노트만도 수십 권입니다. 30여 년의 세월을 따라 작품이 변화돼가는 과정을 볼 수 있는 기록이라 도자기만큼 소중한 흔적이지요.”
입구부터 작업실 내부까지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고도세라믹스는 도자기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수 십 명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한 공동전시장처럼 보인다.
한 사람의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다양한 작품들이 많아 공방을 둘러보는 내내 즐겁고 흥미롭다. 현대미술과의 접목 덕분인지 그의 작품은 유난히 대작이 많다. 조각 기법을 활용한 화려하고 독특한 작품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제는 작품이 너무 많아져 공간을 늘려야 할 상황입니다.”
지금도 서울과 경주를 오가며 왕성한 전시와 작품 활동 중인 그가 행복한 볼멘소리를 한다.
“개성 있는 작품세계는 작가만의 브랜드입니다. 현대적이고 독특한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늘 연구하고 노력하는 이유죠.”
대표작을 물으니 이곳에 있는 모든 작품들이 대표작이라며 웃었다. 소품 하나마저 소홀히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모든 작품에 들인 정성이 애틋한 것이다.
그가 만든 도자기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기능성도 뛰어나다. 그의 예술관이 현실적이고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작업과정과 작품에서 드러나는 그의 대담함과 적극성은 삶 속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후원을 받아 경주시청 안에 전시공간을 만들었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전시회나 미술관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예술과 문화를 좀 더 쉽게, 보다 가까운 곳에서 누릴 수 있게 해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 흙에 대한 열정으로 신소재 개발
홍익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가마 제작 현장에서 경력을 쌓았다. 도자기 작업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옹기 타래부터 새롭게 익힐 정도로 이론보다는 현장에서 땀으로 익혔다. 현장 작업이 이해가 안 될 때는 먹고 자는 것만 해결되면 현장에 뛰어들어 몸으로 배웠다.
대학시절, 방학이면 그의 집은 여주와 경주 현장이었다. 책에서 보는 이론은 다 비슷해서 책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을 찾아 헤맸다. 옹기부터 분청, 청자, 백자를 배우며 현대미술을 접목하는 시도 끝에 그만의 도자기를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29살 패기 넘치는 젊은 도예가는 고향인 경주로 내려가 촌집을 수리하고 가마도 직접 만들어 고도세라믹스를 열었다.
그는 무엇보다 도자기 재료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가졌다. 아무나 쉽게 손댈 수 없는 유약을 만들고 유약과 유약을 접목해서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는 등 재료 연구를 다양하게 시도했다. 흙과 재료에 대한 열정적인 연구는 발명특허로 이어졌다.
클로올링(물방울) 황토 시유제 제조방법부터 황토를 이용한 원적외선 방사 조명등 및 세라믹화로, 특허상표디자인 ‘고다트’까지.
직접 개발한 황토 시유제를 발라 도자기 표면에 물방울이 맺힌 것 같은 느낌을 준다. 100% 자연소재인 이 시유제는 친환경적이다. 그에게도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자체개발한 신소재의 우수성은 수상으로 이어졌다. 2013년 경주시 문화상과 우수숙련기술인상을 받고 2014년에는 최고장인상을 받았다.
오늘도 정직하고 순수하게 흙을 만지는 그는 “도자기는 몸으로 만드는 예술”이라고 했다. 흙이 주는 부드러운 질감이 좋고 지난한 노동의 시간이 예술로 승화되는 것도 행복하다.
도자기에 대한 열정을 바탕으로 흙을 만지고 물레를 돌리며 쉼 없이 몸을 움직인다. 어느덧 세월의 연륜이 진득하게 묻어나는 작품이 세상에 나온다.
도예가라는 직업. 그에게 천직일 수밖에 없다.
경주=김희정 기자 shin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