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에 촛불을 들고 광화문으로, 옛 전남도청 앞 광장으로 모여 들었던 민주시민들의 염원 속에 탄생된 문재인 정부가 국민과 소통하며 적폐를 청산하려 애쓰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며, 민주정부란 바로 이러한 정부라는 것을 실캄케 하고 있다. 이른바 ‘밀월기간’이라고 불리는 집권 초기라고는 하지만 70%대의 높은 지지율은 이러한 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국민들의 높은 지지를 받고, 국민과 높은 소통의 모습을 보인다고 하여 그러한 정치만이 반드시 좋은 정치이고, 바람직한 국정수행의 모습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도자는 때로는 먼 국가의 앞날을 위해서는 국민들로부터의 비판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고, 지지율의 하락도 감내하는 용기를 지녀야한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2018년도 예산(안)에서는 다소 우려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아 보인다. 우선 복지 분야에 많은 배려를 하다 보니 사회간접자본(SOC)에서 20% 정도의 축소가 불가피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0년 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소홀해 온 사회적 약자층을 배려해야 한다는 당위성에는 누구도 이론을 제기하지 않을 것이며, ‘보편적 복지’의 실현 또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인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예산의 대폭 증가에 따른 사회간접 자본에 대한 예산 감축은 다음 세대의 삶을 고려할 때 다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최대의 역점을 두고 있는 ‘일자리 확충’ 측면에서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일자리를 늘리는데, 복지와 사회간접 자본 중 어느 것이 더 효율적일까는 재론이 필요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위험의 파고가 높아져 가고 있는 동북아안보 지형 속에서 국가의 생존을 도모해 내고 후대들에게 행복한 대한민국을 상속해 주기 위해서는 우리 세대들이 얼마간의 어려움은 참아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최첨단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개발(R&D)에 대한 배려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가장 바람직스러운 것은 사회간접자본 및 연구개발 분야를 소홀히 하지 않는 가운데 국민복지도 증진시켜 나가는 것, 즉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권력 기관의 특수 활동비 등 불요불급한 예산을 대폭 감축하는 길 밖에 없다고 하겠다.
예컨대 국회·국정원·검찰·경찰 등에서 사용하는 과다한 특수 활동비는 그자체로서 청산되어야 할 적폐이며, 국민들이 보기에는 ‘눈 먼 돈’에 해당되는 것이다. 언론의 보도와 분석에 따르면 국회의 경우 기존의 상임위원회 외에도 각종 ‘특별위원회’를 구성할 때마다 적지 않는 수당이 지급되어 예산낭비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바로 이러한 것이 국민들의 국회의원들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정치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 개혁 조치에 국회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에서 쉽지 않는 일이겠지만 이 또한 문재인 정부가 안고 있는 미룰 수 없는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일찍이 공자(孔子)가 정치의 요체를 묻는 제자들에게 경제(食)와 안보(兵) 즉 ‘족식족병’(足食足兵)이라고 대답한 데에서 우리 정치가 나아갈 방향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럴 때만이 문재인 정부는 그들의 전통적 지지층을 넘어 국민들로부터 보다 폭 넓은 지지를 받을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비단 우리 세대만이 아닌 후대까지를 생각하는 원대한 국가발전 구상을 도모함으로써 역사에 남는 지도자로 기록되기를 기대한다.
오수열 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한국동북아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