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한산성’(감독 황동혁)은 기존의 자극적인 영화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다소 인내심이 필요한 영화다. 역사적 사실을 재현한 영화는 담백하고 묵직하지만 보는 이에 따라서는 지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남한산성’ 개봉을 앞두고 서울 팔판로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이병헌 또한 “워낙 자극적이고 센 영화들에 다들 익숙해져 있으니 호불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평했다.
“언론시사회가 끝나고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평이 좋아서 많이 놀랐고, 다행이다 싶었어요. 제가 좋아서 선택한 영화지만 좋아하지 않는 분들도 많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시사회가 끝나고 나서 쏟아지는 호평을 보고 신기했어요.”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는 생각에도 불구하고 이병헌이 남한산성을 택한 이유는 자명하다. 어떤 액션보다 더 강렬하고, 어떤 멜로보다 더 뜨거운 감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레버넌트’나 ‘덩케르크’ 같은 영화의 매니아가 존재하는 것을 보면 국내 관객 수준은 높은 데다가 다양성에 목말라 있는 이들도 꽤 많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남한산성’은 지나간 역사적 사실을 그리고 있지만 어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상황이죠. 우리가 국사 시간에 병자호란에 관해 배운 것은 단순한 정보일 뿐이지 감정적인 면을 배우지는 않잖아요. 단순한 이야기와 주고받는 말로 사람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자신이 맡은 최명길이라는 사람의 입장에 관해 완전히 공감할 수는 없다고 이병헌은 말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최명길의 입장이 공감이 안 가서가 아닌, 상대편 김상헌(김윤석)의 입장 또한 공감 가서다. 화친을 주장하는 이와 끝까지 청에게 굴복하지 않겠다는 두 사람 모두의 입장이 이병헌에게는 깊게 와 닿았다. 자신이 연기하기 위해서는 인물에게 깊이 공감해야 하고, 연기할 때는 최명길이었지만 시나리오를 덮고 나면 또다시 무엇이 옳은지 고민하게 됐다.
“연기를 하려면 그 인물을 이해해야 해요. 예전에 제가 했던 작품 중 ‘중독’에서의 인물은 유독 공감하기 어려웠거든요. 동생이 형인 척 하며 사는 것에 관해 이해하기 어려웠고, 결과적으로 작품이 어려워졌어요. 반대인 작품도 있죠. ‘번지점프를 하다’나 ‘내부자들’은 제가 연기를 한다기보다는 그냥 놀았다는 말이 적합해요. 신이 나서 카메라 앞에서 놀았죠. ‘번지점프를 하다’는 불안한 마음과 놀았던 일이 반반인 것 같은데, 같이 머리를 맞대고 연구해나가는 느낌이 컸던 덕분에 애정도 생겼죠. 영화 자체는 크게 흥행 못했지만 많이 마음이 갔던 작품이에요.”
‘남한산성’은 이병헌의 연기력에 대해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그러나 그런 그도 꾸준히 연기를 잘 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언뜻 놀라우면서도 당연한 일이다.
“연기라는 건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가 없잖아요? 단위로 볼 수 있는 일이 아닌 직업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자기 능력치가 객관적으로 평가가 되지 않으니 늘 불만족스럽죠. 사람들이 연기가 좋다, 잘 했다고 말해주면 안도하고 고마워지는 동시에 신이 나지만, 그게 어떤 정도인지 잘 몰라요. 그런 갈증이 있으니 계속해서 연기를 하는 거겠죠.”
“배우가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관찰력이라고 생각해요. 상대방과 입장을 바꿔 생각할 수 있는 힘이랄까요. 세상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있잖아요. 나와 다른 사람을 보고 ‘왜 저래?’하고 일상적으로 지나치기보다는 ‘저렇게 된 원인이 뭘까? 저런 버릇은 어떻게 생긴 걸까? 다르게 말하는 사람은 왜 그럴까?’ 라는 호기심과 궁금증에서 배우라는 직업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에 대해 추리하고, 상상하고, 예측한 후 결과와 비교해봤을 때 맞는 것도 있고 전혀 엉뚱한 추측일 때도 있잖아요. 그런 단계를 거쳐서 다양한 인간을 하나하나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요. 긴 시간동안 저는 그렇게 일해 왔어요.”
‘남한산성’은 오는 3일 개봉한다.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