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백윤식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축약하자면 ‘멋있는 할아버지’쯤이 될 것이다. 노년의 남자 배우들 중 가장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면서도, 단 한 번도 고리타분한 이미지가 없었다. 영화 ‘반드시 잡는다’(감독 김홍선)에서의 백윤식은 느리고, 고리타분하고, 심술맞은 데다가 너무 싫은 노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말미, 관객은 백윤식에게 ‘멋지다’는 갈채를 보낼 수밖에 없다. 최근 ‘반드시 잡는다’ 개봉을 앞두고 서울 팔판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백윤식에게 그가 사랑받는 이유를 들었다.
“최근에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내가 연기했던 캐릭터들을 젊은 친구들이 성대모사하는 모습을 봤어요. 그걸 내가 보면서 ‘야, 그 캐릭터들이 뱉은 말들이 다 맛이 좋았구나.’ 싶더라고요. 내가 맡은 배역들이 그렇게 좋은 성격들도 아니었거든요. 하하. 결국 좋은 작품을 열심히 연기한 것이 관객들에게 영향력을 미친 게 아닌가 싶어요. 상황에 걸맞는 말을 감정을 실어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게 귀에 잘 들어왔던 거죠.”
한마디로 좋은 연기가 그의 자부심이자 사랑받는 이유인 것이다. 실제로 백윤식은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KBS 공채 9기 탤런트로 데뷔해 TV문학관부터 전설의 고향, 공영방송 특집극 등을 거치며 철학이 담긴 연기를 배울 수 있었다는 것이 백윤식의 말이다.
“젊을 때는 공영방송에서 굉장히 많은 극의 주연을 했어요. 문제작부터 권선징악 메시지까지 다양하게 담긴 작품을 했기 때문에 정말 많은 도움이 됐죠. ‘서울의 달’같은 상업극도 물론이고요. 그런 것들을 연출한 분들의 힘 덕에 지금의 백윤식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싶어요. 저를 많이 사랑해주신 시청자분들의 덕도 있죠.”
‘반드시 잡는다’에서는 다양한 노년 액션이 나온다. 되바라진 청년을 쫓아 헐떡거리며 달동네를 거슬러 올라가는 느린 추격전부터, 백윤식을 비롯한 세 사람의 노인이 뒤엉켜 진흙탕에서 뒹구는 모습까지. 그 모습들은 관객들이 봐온 숱한 액션처럼 스릴감 넘치거나, 빠르거나, 화려하지 않다. 그렇지만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숨을 몰아쉬며 느리게 뛰는 모습은 우습게 볼 수 없다.
“다들 힘들지 않았냐고 묻는데, 체력적으로 힘들진 않았어요. 몸이 힘든 건 견딜만 해요. 배우 아닙니까. 최선을 다해야죠. 운동도 항상 하고 있기 때문에 액션 장면은 오히려 즐겼어요. 평소에 머신 위에서 뛰는 것보다 맑은 공기 마시며 밖에서 뛰니까 좋더라고요. 하하. 그런데 비 내리는 겨울밤에 갯벌 위에서 3일 내내 뒹구는 건 좀 힘들긴 하더라고요. 그렇지만 적당히 넘어갈 수야 있나요. 감독도 나도 양에 안 차는데.”
실제로 몇몇 장면에서는 김홍선 감독이 배려 차원에서 그에게 대역 촬영을 제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대역 스턴트맨을 세워 보고 나니 촬영 장면이 백윤식의 마음에는 안 들었다고.
“김 감독이 나중에 슬쩍 와서, 해 보실 수 있겠냐고 묻는 거예요. ‘아이구 얘기를 하지!’하면서 반갑게 찍었어요. 나도 마음에 안 들었으니까. 배우든 감독이든 자신이 맡은 파트 안에서는 프로 정신으로 쟁투해야 하요. 좀 어렵고 힘들어도 철저하고 꼼꼼하게 찍어야 자신의 100%, 혹은 120%가 나오거든요.”
“‘반드시 잡는다’는 현실에 없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나도 사회의 일원으로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비록 평범한 직업은 아니었지만 간접적인 경험은 많이 해 봤거든요. 지금 사회를 지켜보고 있으면 좋은 세상인데도 불구하고 젊은 친구들이 우리 세대가 통과했던 고난 이상으로 큰 고난의 과정을 거쳐야 성공적인 인생을 가질 수 있는 거 같아요. 한 번 통과한 사람 입장에서 보면 안쓰럽고 애틋하죠. 젊은이들이 더 좋은 사회를 만나서 편안하게 가진 뜻을 펼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위기를 맞은 청년을 구하려고 애쓰는 심덕수의 모습이 허구는 아니라는 것이죠.”
‘반드시 잡는다’는 오는 29일 개봉한다.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