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의 한 음료제조 공장으로 현장 실습을 나갔다가 프레스에 눌려 사고를 당한 고(故) 이민호(18) 군의 추모문화제에서 특성화고 학생들은 “회사에서 잘리면 학교에서도 퇴출될 수 있다는 압박을 갖는다”고 토로했다. 취업률 등에 쫓겨 취업을 강요당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특성화고 학생들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전공과 무관하더라도 실습은 의무적으로 나가야 한다. 이 같은 일방적 방침과 열악한 근로 여건, 부실한 지도·점검 등은 학생들을 위태로운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산업체 실습은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실제 현장에서 체험하고 응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은 “배우러 간다기보다 싸게 쓸 수 있는 일꾼이 된 것 같다”고 말한다. 지난 1월에는 전주시의 한 통신사 콜센터에서 실습하던 여학생이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도 있었다.
지난해 교육부가 확인한 실습생의 산업재해 신청은 모두 26건이다. 이는 학교 및 교육청이 보고한 것에 한해 파악된 것일 뿐, 실제 산업재해 발생 건수는 훨씬 더 많을 수 있다.
취업률 경쟁에 급급한 학교가 학생에게 업체의 부당한 처우를 감수하라고까지 하는 상황에서 현행 특성화고사업의 평가 기준을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업체들은 현장실습제를 값싼 노동력을 공급받는 수단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최소한의 학생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마련한 표준협약은 지켜야 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강력한 처벌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정책 실행 의지다. 지난 3월 정부는 실태점검을 벌인 뒤 실습생들의 안전과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며 관련 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상사가 되풀이 되는 구조는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정부는 현장 개선을 위한 조치들이 어떻게 이행되고 정착되는지 면밀히 주시할 필요가 있다.
고 이민호 군의 학교 친구와 후배들은 이 군의 사고 원인 등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책이 마련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실명을 공개하며 다음과 같은 선언문을 전했다. “이번 사고는 우연한 사고가 아니다. 실습생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다. 또 언제든 내 일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사고가 해결될 때까지 앞장설 것이다.”
김성일 기자 ivemic@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