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의 공백이 무색했다. KBS2 ‘빅맨’ 이후 군복무를 마치고 ‘저글러스’로 돌아온 최다니엘은 조용하게 강했다. 극적인 변화를 꾀하지도 않았고, 잘하는 연기를 보려주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가 할 수 있는 역할과 연기를 이전처럼 보여줬을 뿐인데 그게 통했다.
최근 서울 논현로 한 카페에서 만난 최다니엘은 편한 차림으로 기자들을 맞았다. 안경을 끼고 정장을 입은 채 냉정한 눈빛을 보내던 남치원 상무가 아닌 자유로운 분위기의 배우 최다니엘로 돌아와 있었다. 최다니엘은 ‘저글러스’ 시작부터 많은 것을 보여주지 않으려 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전 처음부터 무게감 있게 드라마의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리 로맨틱 코미디라지만 모든 인물들이 좀 떠있는 느낌이었거든요. 누구 한 명이라도 중심을 잡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어요. 진정성이 사라져버릴 것 같았죠. 그래서 ‘크게 많은 걸 보여주지 말자’, ‘아무 것도 하지 말자’는 생각을 했어요. 드라마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연기 톤을 잡으려고 했어요. 그렇게 하면 다른 배우들도 마음대로 코믹 연기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못하는 코믹 연기는 다른 배우들에게 시켰어요. 이 장면에서 이렇게 하고 이런 호흡으로 말하면 빵 터질 거라고 많이 괴롭혔어요. 다행히 형들도 잘 받아주셨어요. 그게 제일 감사하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 했다’는 건 드라마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최다니엘 자신을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과거 촬영 도중 입은 무릎 부상이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정확한 원인도 알 수 없어 증상만 완화시키고 있다. 군 복무를 현역으로 하지 못한 건 물론 앞으로도 액션 연기를 하기 힘들 수 있다. 앉아서 하는 직업을 해야 하나 생각한 적도 있다.
“병원에서 치료도 받고 관리하고 있는데 낫는 게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정확한 원인 없이 발생하는 거라고 해요. 지난해에도 수술을 했는데 안 나아서 증상만 완화시키는 치료를 받고 있어요. 예전에는 무릎 때문에 주연을 포기하고 라디오를 한 적도 있어요. 그땐 평생 못 걸을 줄 알았죠. 다른 직업을 구해야 되나, 앉아서 하는 직업이 뭐가 있을까 생각했을 정도니까요. 다행히 호전된 상태에서 영화를 마쳤어요. 군사 훈련도 잘 다녀왔고, 군복무도 무사히 마쳤죠. ‘저글러스’는 촬영 전에 재활도 하고 보강치료도 받아서 견딜 만 했어요. 사실 걱정되는 건 무릎 하나밖에 없어요. 괜한 욕심에 출연하다가 중간에 못하게 되면 피해를 끼치게 되니까요.”
사회복무요원으로 대체 복무를 하는 동안 최다니엘은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으로 보통 직장인의 생활을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다고 털어놨다. 사람들에게 퇴근 후의 시간이 생각 이상으로 소중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제가 9시간 근무를 하면서 간접적으로 보통 직장인의 생활을 경험했잖아요. 그러면서 느낀 게 있어요. 만약 제가 퇴근한 다음 밥 먹고 영화를 보면 오후 10~11시인 거예요. 그러고 다음날 또 출근하는 게 보통이죠. 그런 시간을 쪼개서 애인과 데이트하는 도중에 2만원을 내고 본 영화가 마음에 안 들면 안 되잖아요.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시간과 값을 치르고 보는 것일 수 있으니까요. 작품에 아쉬움이 있으면 보는 사람 입장에선 짜증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드는 사람들이 사소한 것까지 신경 써서 잘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최다니엘은 소속사와 의견 조율 끝에 ‘저글러스’에 출연한 것이라고 털어놨다. 공백기를 줄이는 것이 출연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였다. 대신 그가 하고 싶은 연기는 따로 있다고 밝혔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는 연기를 해보고 싶어요. 굳이 흥행할 수 있고 대중적인 작품이 아니라도 좋아요. 독립 영화 같은 소규모 작품도 좋고, 개인 소장용이 돼도 좋거든요. 극적인 느낌이 아닌 자연스럽고 리얼리티한 느낌의 연기를 하고 싶어요. ‘저글러스’를 하고 나선 로맨틱 코미디를 한 번 더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다음엔 좀 더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지 않을까 싶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