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진짜 필요한 성교육은 무엇일까

[기자수첩] 진짜 필요한 성교육은 무엇일까

기사승인 2018-02-14 04:00:00

“‘앙 기모띠’ 무슨 말인지 아시는 분은 손들어보세요.”

지난해 열린 한 학술대회에서 주제발표를 했던 모 교수님의 말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의료진과 전문 상담가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는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요즘 아이들’의 언어를 학습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일본 포르노에 자주 등장하는 ‘앙 기모띠(좋아)’, ‘야메떼(그만해)’와 같은 표현이 10대 사이에서 유행어로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음란물 중독으로 부모와 병원을 찾은 학생에게 진료 대기시간 동안 옆에 앉은 환자가 무료사이트를 알려주고 있더라는 에피소드도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과 스마트기기 등을 통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에도 쉽게 노출되고 있고, 10대도 예외는 아니다. 이는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맞닥뜨린 새 과제가 됐다.  

학교현장에서는 성희롱, 성폭력이 만연한지 오래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여성위원회가 교사 63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7 유·초·중등학교 성평등 인식 실태'에 따르면 전체 교사의 59.2%가 "학교에서 여성혐오표현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고 답했다. 경기도에 근무하는 한 초등학교 교사는 “고학년 학생들 중에 일부러 못된 말을 하는 아이들이 종종 있다. 솔직히 5~6학년 맡기가 겁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얼마 전에는 한 어린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초등학생이 여자MC에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제스처를 취한 것이 생방송에 포착돼 충격을 주기도 했다.

우리 사회는 과거보다 성(性)에 개방적인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학교 성교육도 발전했다. 과거 성교육이 정자와 난자의 결합 등 생물학적 지식전달에 그쳤다면, 최근 성교육 시간에는 인체 모형을 활용하기도 하고, 콘돔사용법을 비롯한 피임법, 배란기 계산법 등 과거보다 진보된 교육을 받는다. 이에 맞춰 서울시는 올해부터 학교 현장에 무상으로 콘돔을 비치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청소년들의 원치 않는 임신을 적극 예방하겠다는 취지다.

그런데 이 같은 변화가 제대로 된 방향인지는 의심스럽다. 여전히 아이들은 각종 콘텐츠를 통해 성의 쾌락과 자극만을 다룬 비뚤어진 성을 배운다. 뒤따르는 책임과 불행은 잘 모른다. 과거보다 나아졌다는 성교육도 생식에 그쳐 성별이해도를 높이지 못했다. 콘돔사용법은 알지만 여전히 생리가 어떻게 나오는 줄은 모르는 아이들이 계속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확산되고 있는 미투(Me too)운동에 등장하는 가해자들은 어떤 유년기를 보냈을까. 왜 피해자 집단과 가해자 집단의 온도차가 이토록 극명하게 갈릴까.  과거세대의 잘못을 아이들이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성교육이 필요할지 곰곰히 생각해볼 문제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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