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회 전날 너무 긴장해서 두 시간밖에 못 잤어요. 그래도 고생한 것에 비해 노력한 모습들이 많이 보여서 다행이에요.” 영화 ‘괴물들’의 개봉을 앞두고 최근 서울 팔판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원근의 말이다. “예전보다 조금 더 발전하긴 한 것 같은데, 만족하기는 어렵네요. 항상 열심히 하려고 해서 그런가, 분명히 좋아진 부분들이 약간은 있는 것 같아서 좋아요.”
배우라는 것은 절대적인 기준이 없는 직업이다. ‘연기 참 잘 한다’라는 말 속에는 객관적인 평가 기준이 없고, 배우들 역시 이 부분에서 가장 고통받는다.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을까. 이원근 또한 연기를 잘 하기 위해서 늘 고민한다. 그러나 그 방식이 남들과는 조금 다르다.
“연기를 잘 한다는 기준은 모호하지만 저의 연기를 판단하는 저만의 기준은 분명 있어요. 눈물을 흘리는 감정 장면으로 예를 들자면, 얼마나 빨리 찍을 수 있느냐, 혹은 얼마나 빨리 눈물을 흘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그 장면을 내가 보면서 안타까운지, 안타깝지 않은지가 제 기준이죠. ‘괴물들’을 보면서도 그런 기준들이 충족되지 않아 아쉬운 것들이 많았어요. 저는 제가 나온 작품들을 수없이 되돌려보는데, 지금은 한 번 봤지만 두 번 세 번 보면 더 아쉬운 장면들이 늘겠죠. 그렇지만 그 아쉬운 것들을 계속 곱씹으면서 다음에 반복하지 않으면 그게 쌓여서 성장으로 갈 수 있는 발판이 되는 것 같아요.”
‘여교사’는 열 번을 봤고, ‘환절기’는 여섯번을 봤단다. 볼 때마다 아쉬운 것이 늘 생기지만 이원근은 괴로워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나온 작품을 보면 속된 말로 ‘이불 찬다’는 배우들도 많지만 이원근은 “아쉬워 할 시간에 더 고민하고 보완해야 더 늘지 않겠느냐”며 미소지었다.
“저도 제가 나온 작품을 다시 보면 당연히 부끄럽죠. 그렇지만 아쉬움이 더 커요. 빨리 고쳐나가야지, 부끄러워만 하고 외면하면 어떻게 해요. 어떤 장면이 아쉽다면 부족한 것이 뭔지 찾고, 보완해보는 게 우선이죠. 물론 저 스스로에게 칭찬도 잘 해줘요. 제가 봐도 마음에 드는 모습이 있으면 ‘원근아, 이건 잘 했다!’하고 다독거려 주죠.”
영화 ‘괴물들’의 재영은 오랫동안 괴롭힘당한 나머지 비윤리적인 선택을 하는 인물이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할 수도 있다는, ‘괴물들’의 메시지를 관통하는 캐릭터. 학교폭력의 굴레 안에서 재영이 할 수 있는 선택은 그리 많지 않다. 대한민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 중 하나로서 재영과 열외, 따돌림이나 폭력에 대한 이원근의 생각은 어떨까.
“재영이는 참 연약한 캐릭터예요. 재영이를 만들 때 참고한 건 사람이 아니라 저희 집 개였죠. 저를 쳐다보면서 간식을 줄까, 안 줄까. 하고 눈을 굴리는 모습을 보고 만들었죠.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면서 계속 신경을 쓰는 모습은 십대의 표본 같은 캐릭터예요. 영화가 다루는 사건들은 영화적이지만 충동적이고 앞뒤 가리지 않는 모습들은 리얼하죠.”
“저는 학창시절에는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교실에서 만화책 보고, 누가 때리면 맞고 그런 애들이요. 솔직히 저는 혼자 있는 것도 좋아하고, 친구들이 저를 내버려둬도 오히려 그게 편해요. 그렇지만 일반적으로는 열외를 겁내는 게 보통이겠죠.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단체생활을 기본으로 하는데, 거기서 소외된다고 하면 얼마나 겁나고 무섭겠어요. 원치 않는 상황도 많을 거고요. 힘이 없는 자신에 대한 불안감이나 자괴감도 있을 거예요. 어른들이 그런 친구들에게 관심을 많이 가져주면 좋겠어요. 학교폭력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사실 어른들의 올바른 개입이 최선이거든요.”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