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역사적인 만남이 27일 성사됐다. 두 정상의 만남은 TV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이번 회담을 그 누구보다 긴장하며 지켜본 이들이 있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 대표들이다.
입주 기업 대표 10명은 이날 오전 서울 영등포구 개성공단기업협회에 모여 남북정상회담 TV 생중계를 지켜봤다. 윤석규 개성공단영업기업연합회 회장도 이 중 한 명이다. 건설업체를 운영하는 그는 지난 2004년부터 폐쇄 직전인 지난 2016년까지 개성공단 내에서 공장, 출입국 사무소, 폐수종말처리장 등을 지었다. 개성공단에 첫 번째로 들어선 공장을 지은 인물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났다. 두 정상의 만남을 어떻게 바라봤나
처음에는 우려가 됐다. TV 화면에 비친 김 위원장의 얼굴이 너무 굳어 있었다. 그러다 군사분계선에서 문 대통령과 마주하며 조금씩 웃음을 띠기 시작했다. 이후 오전 회담에서 ‘평양냉면’ 이야기를 하며 농담을 건네는 걸 보고 안심이 됐다. 회담이 잘 풀릴 것이라는 기대가 인다.
두 정상이 군사분계선 앞에서 귓속말을 나눈 것도 좋은 징조라고 본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너무 궁금했는데 보도를 보니 문 대통령이 ‘저는 북측에 언제 갑니까’라고 하니까 김 위원장이 ‘갔다 오자’면서 군사분계선을 넘은 것이라고 하더라.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관계가 개선된 것을 보니 다시 한번 울컥했다.
-개성공단 재가동 등 남북경협은 이번 회담의 주요 의제가 아니다. 아쉬운 마음은 없었나
개성공단 기업인의 입장에서는 남북경협 의제가 빠진 것이 솔직히 섭섭했다. 문 대통령은 앞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통화하며 납북자 문제 거론을 약속했다. ‘다른 나라 문제를 언급할 수 있다면 개성공단도 거론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이번 정상회담은 향후 경협으로 이어지는 길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들이 오전에 청와대 앞 광장을 방문, 문 대통령과 예정에 없던 만남을 가졌다. 문 대통령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그야말로 ‘깜짝’ 인사였다. 판문점 방문을 위해 이동하던 문 대통령이 차에서 내려 재향군인회와 인사를 나눴다. 이후 차에 탑승하려고 하시다가 “대통령 파이팅”을 외치는 우리 목소리를 들으셨다. 우리 쪽으로 오신 후, 입주 기업 대표들의 손을 한 명 한 명 잡아주시며 악수를 했다. 문 대통령의 손이 너무너무 따뜻하더라. “(정상회담을) 잘하고 오겠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오전 5시부터 나가서 기다렸던 보람이 있었다.
-개성공단 재개는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공단 재가동이 이뤄질 것으로 보는가
빠르면 오는 10월 안에 좋은 소식이 들릴 것으로 기대한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 모두 ‘파격적’인 사람들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파격적인 결과물을 우리에게 보여줄 것으로 생각한다. 빠르면 오는 6월에 ‘6·15 선언’을 기념해 시설점검단이 개성에 올라갈 수 있으리라 본다. ‘10·4 선언’이 진행된 오는 10월까지는 무언가 풀리지 않을까. 앞서 김 위원장은 남측 예술단의 평양 공연을 본 후 “가을에 또 보자”라며 북측 예술단의 서울 공연을 제안했다. 가을이 여러모로 남북관계의 분기점이 될 것 같다.
-지난 1월부터 남북관계가 급진전 됐다. 예상하고 있었나
김 위원장은 1월 “북과 남 사이 접촉과 내왕, 협력과 교류를 폭넓게 실현해야 한다. 서로의 오해와 불신을 풀고 통일의 주체로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자”는 신년사를 발표했다. 이를 듣고 기분이 정말 ‘죽을 만큼’ 좋았다. 북한에서 신년사는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진다. 북한 사람들은 매해 최고지도자의 신년사를 달달 외워야 한다. 연초마다 개성공단 북한 직원들에게 “신년사 학습은 이따 하고 일 좀 합시다”라고 외칠 정도였다. 뭔가 풀리겠다는 생각이 확실하게 들었다.
-개성공단이 재개된다 하더라도 이미 피해를 본 기업들이 재입주를 꺼릴 것이라는 지적도 인다
공단만 재개된다면 무조건 다시 개성에 갈 것이다. 개성공단 기업협회에서 한 달 전에 입주 기업 관련 조사를 진행했다. ‘어떤 경우에도 무조건 입주한다’ 26%, ‘제도 정비 등 기반이 충족되면 입주한다’ 70%였다. 96% 이상의 기업이 개성공단 재입주 의향을 보였다. 정상회담이 화기애애하게 이뤄지면서 개성공단에 입주하겠다는 의견이 더 늘 것 같다.
-남북관계의 불안정성에도 불구, 개성공단에 다시 가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개성공단만큼 기업이 활동하기 좋은 곳이 없다. 저임금에 언어도 통하고, 물류비도 절감된다. 노동자들도 모두 숙달돼 있다. 개인적으로는 14년 동안 북측 직원들을 가족처럼 챙기며 지냈다. 그 아이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지낼지 걱정도 많이 된다. 지난 2013년 개성공단이 5개월가량 중단됐다. 이후 재개됐을 때 공단 부지에 가보니 북측 직원들이 회사 부지의 풀을 다 뽑고 정리를 했더라. 당시 직원들이 “(사장님이) 오길 기다렸다. 와주셔서 고맙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핑 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개성공단 재개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
아직 개성공단기업협회 차원에서 정확히 합의된 바는 없다. 정상회담이 끝나고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북·미정상회담이 이뤄지기 전에 개성공단 기업인들이 방북신청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