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루브리컨츠가 지난 2013년과 2015년 이어 세 번째로 도전했던 상장에 또 다시 실패했다. 수요 예측 과정에서 회사 가치를 예상보다 낮게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SK루브리컨츠의 지분 100%를 갖고있는 SK이노베이션은 이번 상장으로 확보한 현금 1조원을 배터리 증설에 사용할 예정이었는데 이 신사업 계획에도 빨간불이 켜진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30일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SK루브리컨츠가 3년만에 도전했던 상장을 철회하고 금융감독원에 상장철회신고서를 제출했다.
SK루브리컨츠는 윤활유 브랜드 ‘지크(ZIC)’ 보유한 업체로, 원유로부터 기유(Base oil)와 윤활유를 개발,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 기준 기유사업 비중은 86.65%, 윤활유사업 비중은 13.35%다.
SK루브리컨츠는 오는 5월 중순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목표로 지난달 25일과 26일 이틀간 최종 공모가 확정을 위한 수요예측을 진행했다. 희망 공모가 밴드는 10만1000~12만2000원이었다. 공모총액은 약 1조2894억~1조5574억원으로 예상됐다. 이는 올해 상장한 14곳의 공모총액(5674억원)보다 2배 이상에 달했다. 이와 함께 SK루브리컨츠의 몸값은 최대 5조2000억원으로 예측됐고 국내 기관의 수요예측에서는 오버 부킹되는 등 올해 상반기 대어로 기대가 컸다.
SK루브리컨츠는 상장을 통해 현금 1조2000억원을 조달하려고 했다. 이 중 신주 상장에 해당하는 2000여억원은 SK루브리컨츠로, 구주 상장에 해당하는 약 1조원은 SK이노베이션으로 유입될 예정이었다. SK이노베이션은 1조원으로 미래 먹거리인 전기차 배터리 등 비정유 부문에 투자하는 등 실탄을 챙길 예정이었으나 이 또한 무산된 것이다.
SK루브리컨츠 관계자는 상장 철회 후 “견조한 실적과 튼튼한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글로벌 프로젝트를 차질 없이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 역시 “예정됐던 투자계획 등에는 영향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수 도전 실패 원인은 당초 공모가 밴드를 너무 높이 잡았기 때문이다.
증권업계관계자는 “사업 전망은 밝지 않은데다 공모가가 다소 비싸게 산정됐고 국내에 SK루브리컨츠와 비슷한 윤활유 전문 기업이 없어서 비교 가치 책정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SK루브리컨츠 매출의 86%를 차지하는 기유 시장은 낮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SK루브리컨츠 본사 가동률이 73.6% 수준이다. 시장정보 업체 ICIS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2년까지 기유시장 성장률은 연평균 0.3%로 예상된다.
기유는 그룹 1~5로 분류된다. SK루브리컨츠는 상대적으로 성장성이 높은 그룹 2와 그룹 3기유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으나, 그룹 2와 그룹 3기유의 수요전망도 좋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그룹 2와 그룹 3 기유는 자동차의 엔진 및 트랜스미션용 윤활유 제조로 주로 사용된다.
한국기업평가관계자는 “연비와 환경 규제로 전기차 등 친환경 자동차 수요가 커지고 있어 내연기관 자동차에 사용되는 기유와 윤활유 수요는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기관투자자가 SK루브리컨츠 사업전망에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결국 세 번째 도전에도 실패하면서 당분간 상장 작업은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의 비정유 부문 수익 확장을 위해 선제 대응할 실탄 마련에도 차질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SK이노베이션은 차세대 먹거리로 전기차 배터리를 꼽고 현재 생산능력(4.7GWh)에서 2020년까지 20GWh를 확대하기 위해 중국과 헝가리 대형 공장 확대를 진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비정유 사업인 전기차 배터리와 화학사업을 중심으로 총 10조원이 넘는 자금을 투자할 계획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세번째 상장 도전에 실패한 만큼 SK루브리컨츠가 또 다시 상장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면서 “하지만 2022년 SK루브리컨츠, SK이노베이션의 신규 윤활기유 공장 건설, 대규모 투자가 들어가는 때인 2020~21년, 5조원 이상으로 자신감이 부각됐을 때 SK이노베이션의 다른 계열사들을 상장시킬 가능성도 있긴 하다”고 예상했다.
이종혜 기자 hey33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