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은 한 번도 죄송하다고 말한 적이 없어요.”
의료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A씨의 말이다. A씨의 아버지는 담관암 수술 후 회복과정 중 감염 및 낙상사고로 혼수상태를 지속하다 결국 사망했다. A씨의 가족은 의료진의 처치 미숙과 관리부실을 사망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현재 의료분쟁조정절차를 밟고 있는 그는 “병원이 아버지를 돌아가게 한 것이 명백한데 왜 입증을 우리가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의료사고를 당했을 때 피해자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강화해달라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최근 배우 한예슬씨가 지방종 제거 수술을 받다가 의료사고를 당했다고 알린 것이 이 같은 목소리에 불을 지핀 셈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억울한 의료사고 피해자들의 사연이 연달아 올라오고 있다.
저마다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의료사고 피해자들은 한 목소리로 병원의 태도와 의료사고 입증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의학 지식이 전혀 없는 개인이 병원이라는 전문가 집단에 맞서는 일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의료사고 피해자들이 보상을 받는 사례는 드물다. 2012~2016년까지 5년간 한국의료분쟁조정원에 접수된 의료분쟁 상담건수는 총 19만4554건에 달했지만, 조정개시 건수는 총 3229건으로 1.6%에 불과했다. 조정절차를 통해 조정원이 합의안을 제시하더라도 병원이 불복할 경우 환자들이 들인 시간과 노력은 물거품으로 돌아간다.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도 있지만 결과가 불투명하고, 분쟁조정 절차보다 까다롭기 때문에 포기하는 이들이 태반이다.
일각에서는 한예슬씨가 잘 알려진 연예인이기 때문에 병원의 사과를 받을 수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동안 일반인이 의료사고 의혹을 제기했을 때는 고자세로 나오던 병원이 연예인의 사고에 대해서는 즉각 사과하는 모습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는 피해자도 적지않다. 하지만 본질은 차별보다는 시스템에 있다. 의료서비스를 받는 소비자라면 누구나 의료사고를 당할 수 있고 이는 의료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의료사고 피해를 인정받는 환자가 매우 드문데다 환자의 지위나 직업, 빈부에 따라서 구제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은 현재의 시스템이 소비자에게 과도하게 불리하다는 반증이다.
그동안 환자단체 등의 노력으로 지난 2016년 11월 사망이나 중상해 등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분쟁 조정절차가 자동 개시되는 일명 ‘예강이법’이 시행된 바 있다. 또 올해 3월에는 병원이 진료기록부의 원본과 수정본을 의무적으로 보관하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통과하는 등 일정부분 성과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환자들의 입장에서 의료사고는 여전히 높은 벽이다. 의료사고 피해를 입더라도 누구나 공정한 판결을 얻을 수 있도록 시스템 보완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