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해진은 영화 ‘레슬러’(감독 김대웅)의 주제를 ‘한 번쯤 생각해보자’로 정의했다. 인생을 살며 나의 목적을 찾는 것도 중요하고, 어떻게 사느냐도 중요하지만 한 번쯤 자신의 인생과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며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자는 뜻이다. 최근 서울 팔판로의 한 카페에서 영화 개봉을 앞두고 만난 유해진은 “어머니께 불효한 자식으로 남은 게 항상 후회된다”고 말했다.
극중에서 귀보(유해진)와 성웅(김민재)은 잔소리를 하는 자신의 부모에게 각자 “나랑 얘기하기 싫어?”라며 성을 낸다. 성웅은 아빠인 귀보에게 화를 내고, 귀보는 엄마(나문희)에게 똑같은 대사를 한다. “어머니가 저 군대 있을 때 돌아가셨어요. 속만 썩이고 가슴에 못 박는 이야기만 했었죠. 그렇지만 나중에 느꼈어요. 부모로서 자식에게 잔소리를 안 하는 것도 이상하다는 것을요. 영화를 보면서 몇몇 장면에서는 눈물이 확 나더라고요. 우리 부모님도 나를 예뻐하고 얼굴을 부비던 시절이 있었을텐데, 하고요.”
‘레슬러’는 개봉 전부터 스무 살 꽃다운 나이의 가영(이성경)이 마흔 살 귀보를 좋아한다는 설정으로 논란이 일었다. 어린 여성에게 나이 많은 홀아비를 짝지어주는 풍경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면 오히려 논란이 된 부분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에 관해서도 유해진은 “영화 자체가 짝사랑의 이야기다”라고 설명했다. 가영이 귀보를 좋아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도 짝사랑이라는 것이다.
“이슈가 됐어서 조금은 걱정했어요. 오해가 많으니까요. 하지만 그 설정도 영화의 전체 주제가 ‘짝사랑’이라는 걸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에요. 가영에게는 소중한 마음이지만 귀보에게는 ‘가영이가 이 시기를 다치지 않고 잘 넘겼으면 좋겠다’고만 생각되는 정도라 큰 이슈가 될 것 같진 않아요. 막상 일반시사 현장에서는 관객분들이 유쾌하게 웃고 좋아하시고요.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해프닝도 있는 거죠.”
유해진의 오랜 별명은 ‘명품 조연’과 ‘신 스틸러’. 그러나 사실 ‘신 스틸러’는 조연으로서는 그리 유쾌한 별명은 아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받아야 할 스포트라이트를 조연이 받게 되고, 주의를 끄는 바람에 이야기를 망칠까 노심초사하게 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중요한 건 제가 한 장면에서 튀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죠. 그래서 신스틸러라는 별명에 대해 고민하곤 해요. 관객분들의 시각은 모두 다르니까요. 어떤 장면에서 제가 이야기에 필요 없이 튀어나오면 스스로도 ‘왜 저래?’ 싶을 때도 있거든요. 그래서 어지간하면 저를 선택해준 분들의 기대감을 충족하는 것에만 치중하려고 해요. 저를 어떤 작품의 캐릭터로 캐스팅했을 때는, 제게 기대하는 모습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에게 기대한 모습을 제가 못 보여줬다면 속상하고 미안할 뿐이죠.”
“제가 주연감인지, 조연배우로 족한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계속 검증을 받고 있는 단계인 거라고 생각해요. 관객들의 눈앞에서 매순간 검증을 받고 있는 거죠. 유독 남자들이 많은 영화에 출연한다고요? 아니에요. 제가 남자들 나오는 영화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더 큰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이죠. 여배우들이 할 수 있는 작품들이 너무 많이 줄었거든요. 남자만 나오는 영화에 제가 나오는 거예요.”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