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한 인간들이 많네요. 질염이 성병입니까?”
얼마 전 ‘질염’ 치료에 필요한 질 소독을 일부 산부인과의원에서 비급여로 부당청구 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썼다. 부당청구를 할 수밖에 없는 산부인과 현실과 그로 인해 여성 환자들이 피해를 받고 있다는 부분에 초점을 맞춘 기사였다. 그러나 달린 댓글들은 질염이 걸리는 ‘이유’에 대한 갑론을박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일부는 여성이 질염이 걸리는 이유가 성관계, 불청결 때문이라고 했다. “성병 맞아”, “난잡한 성관계, 비위생적인 것이 주원인. 가만히 있다가 걸리는 경우는 흔하지 않음. 질 세정제 사용하지도 않고 물로 대충 씻으니 항상 질염 위험군에 있는 것”, “질세정제를 사용해라”, “트리코모나스 질염은 성병이다”, “청결도 영향을 준다. 지저분하게 관리하면 매일 달고 사는 거다”, “날씨나 습해도 생긴다니. 좀 씻어라 인간적으로 더럽다”, “질이 건강해야 건강한 아기를 낳는데, 웃기는 짬뽕이다” 등의 의견이 있었다.
이를 반대하는 네티즌들은 “여성 성 지식이 부족한 남자들, 질염은 감기와 같은 거다. 면역력이 영향을 준다”, “생리 중 생리대로 인해, 운동 후 땀으로 인해 조금만 습해도 걸릴 수 있는 것이 질염이다. 성병이랑 질염 구분도 안 되나”, “세정제로 자주 씻으면 오히려 질 건강에 좋지 않다. 오히려 질염이 더 잘 걸릴 수 있다”, “여자로 못 살아보는 생명군들은 말을 쉽게 하지 말라. 질염도 다 종류가 다르다. 포경 안 한 사람들은 관계 전 꼭 깨끗이 닦고, 씻지 못할 땐 콘돔 사용하고”, “가장 빈번한 원인은 습한 날씨와 면역력 저하 등이다. 굳이 성관계를 언급하는 의도가 뭐지?”라는 댓글을 달았다.
한쪽은 질염을 씻지 않아 생기는 혹은 문란한 성생활로 인해 생기는 질환이라고 주장했고, 다른 한쪽은 이에 반박하며 질염의 다양한 원인을 설명했다. 이들의 이름, 나이, 성별을 알 수는 없지만 ‘여자’와 ‘남자’를 가르고 있다는 점은 짐작할 수 있었다.
일단 질염에 대해 설명하자면, 질염은 성병의 동일어가 아니다. 산부인과 전문의에 따르면 질염은 말 그대로 질에 염증이 생긴 것이고, 성병은 성 매개성 감염에 의해 질환으로 이환되는 경우를 말한다. 물론 콘돔 사용이 질염 위험을 낮출 수 있고, 성매개로 인해 질염이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가장 흔한 원인은 아니다.
대부분의 질염은 ‘청결’보다도 습함이나 면역력 저하와 관련이 깊다. 다른 우리 몸과 같이 질에도 여러 균이 사는데, 면역력이 저하되면 질 건강을 유지시켜주는 ‘유산간균’이 적어지고 다른 균들이 증식하면서 염증이 생길 수 있다. 또 아기 기저귀 발진과 같이 외음부가 습하게 되면 곰팡이균이 증식할 수 있다.
트리코모나스 질염은 트리코모나스 원충에 의한 성매개성 감염에 의한 질환으로, 전염력이 강해서 한 번의 성관계로도 성 파트너에게 옮겨질 수 있어 남성과 여성 모두 치료가 필요하다.
‘콘돔’ 사용이 질염 예방에 도움이 되는 이유는 이러한 성 매개성 감염 위험을 95% 이상 낮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알칼리성인 정액이 질에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질 건강을 유지시켜주는 ‘유산간균’은 약산성 상태에서 잘 살 수 있는데, 정액과 만나면 질내 산성이 중화된다.
사실 질염에 대한 이런 질환 정보는 그동안 언론에서 꾸준히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질염의 원인과 예방법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이유는 무엇일까. 또 입장이 극단적으로 나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질환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너무 다른 두 성(性)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일까.
최근 미투 운동, 홍대 몰카 사건, 양예원 성추행, 가수 문문의 화장실 몰카 범죄 등 성(性)과 관계되는 범죄가 연이어 발생하자 사건의 근본적 ‘원인’에 대해 이성 간 의견이 분분하다. 이러한 갈등은 이성 혐오 현상으로 발전돼 성대결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우려스러운 점은 ‘질환’에 대해서도 성대결이 펼쳐지는 것은 아닐까하는 것이다. 여성, 남성에게 나타나는 질환은 다를 수 있지만 그 원인은 모두에게 있다. 그에 대한 책임도, 미치는 영향도 모두에게 있다. 치료를 위해서는 정확한 정보가 필요하고, 더 나은 치료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협조가 필요하다. 몸도 마음도 너무 다른 ‘이성’이지만 건강할 권리는 모든 인간에게 있다. 건강과 생명에 직결되는 사안에 대해서만큼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 존중이 있길 바란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