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말했다. “우선 화장실부터 시작하지만(중략) 공중화장실부터 탐지기 보급 등을 통해서 실질적으로 거의 매일 일상적으로 체크하도록 해서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공분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시작하자는 것.”
그러자 한 기자가 물었다. “서울시 등 지자체들도 몰카 탐지기를 동원해 단속을 하고 있지만, 현장에선 공중화장실에서 (몰카가) 발견된 실적은 거의 없다고 한다.”
김 장관이 답했다. “주로 공중화장실에서 촬영되거나 유포된 게 한 30~40% 사이로 알고 있다. 그래서 우선 여기부터 하고. 사회에 보내는 경고메시지다.”
지난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날 교육부·법무부·행안부·여가부·경찰청의 장·차관들은 불법촬영 범죄 근절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같은 날 오전 청와대 염규숙 여성가족비서관은 인터넷 생중계를 통해 이 사안에 대해 “정부가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다”며 나름의 대응책을 전하기도 했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일순 확고해 보인다. 최근 경찰이 해외 거주 중인 ‘소라넷’ 운영자를 잡아들였다고 발표하는 듯 일부 진척도 있는 듯 하다.
여기까지다. 이유야 뻔하다. 접근부터 잘못됐기 때문이다. 정부의 헛발질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은 15일 ‘행사’ 후 진행된 5개 부처 장·차관들의 공중화장실 ‘시찰’이었다. 앞선 언론과의 질의응답에서 보듯 이를 김부겸 장관은 경고성 메시지라며 그 의미를 밝혔지만, 이날의 ‘행사’를 바라본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은 울화통이 터졌을 거라고 예상한다.
디지털 성범죄가 끊이질 않는 이유는 영상이 ‘돈’이 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모두가 아는데, 오직 정부만 모르는 듯하다. 불법 영상물이 음성적인 포르노 산업의 한 축으로 자릴 잡아오는 동안 정부는 무엇을 했을까.
온라인 커뮤니티 공간에서 악의적 의도 혹은 재미 등의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몰카 영상을 올린 이가 있다 치자. 불법영상은 저작권이 없다. 때문에 누구든 유포자가 될 수 있다. 영상은 확산되기 시작한다. 다시 누군가 해당 영상을 P2P 사이트에 업로드하고 자극적인 제목을 붙여 유저들의 다운로드를 유도한다. 유저들이 플랫폼에서 일정 크기 이상의 영상을 다운로드 받으려면 사이트에 돈을 내고 사야하는 일종의 ‘사이버머니’가 필요하다. 플랫폼은 몰카 영상을 구입하려는 유저의 돈으로 지갑을 불린다.
위의 불법영상물 유포 프로세스는 국내에서 벌어지는 숱한 경우의 수 중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공통점은 플랫폼 사업자들이 이러한 불법 영상물이 유포되는 것에 묵과 혹은 암묵적 동의를 하고 있다는 데 사실이다. 사업자들은 범죄의 결과물로 부수적인 수입을 얻고 있다. 비겁하다.
일각에선 ‘플랫폼이 무슨 죄’냐는 반문도 나온다. 가령, 백화점에서 장물이나 짝퉁 상품을 판매한다 치자. 해당 백화점은 마켓으로써 이곳에 방문한 이들에게 부적절한 제품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책임을 져야할까, 지지 말아야 할까?
또한 플랫폼에 정부가 제재나 강제를 가하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된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기자는 범죄의 결과물을 제재하는 것 정도로 사업이 위축된다면, 그런 플랫폼이라면 망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진정 정부가 디지털 성범죄 근절에 의지를 갖고 있다면, 유통 경로부터 차단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해외에 계정을 둔 포르노사이트나 SNS에 유포된 영상 해결의 어려움을 토로할 뿐, 국내 플랫폼에 대한 명확한 제재 입장은 밝히고 있지 않다.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전국의 공중화장실을 언제 다 점검할 것이며, 개인 소유 건물 등의 화장실은 점검 범위에 포함할 것인지, 또한 모텔이나 비디오방 등은 어쩔 것인지 정부는 대답하지 않는다.
김부겸 장관이나 정현백 여가부 장관은 “강력한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장관들은 알까. 이 메시지에 바들바들 떨 플랫폼 사업자나 유포자, 해외포르노사이트 운영자는 과연 얼마나 있을까? 차라리 솔직해지기라도 하자. 화장실 시찰은 그냥 대외용 ‘액션’ 혹은 카메라 마사지에 지나지 않는다고.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알려달라고 말이다.
촌극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개발 중이라는 인공지능 필터링 기술에 이르러서 완성된다. 단언컨대 현 정권에서 해당 기술이 적용될 일은 없을 것이다.
정부의 헛발질이 길어질수록 넷을 타고 영상은 계속 유포될 것이며 피해자들의 고통도 더 커질 터. 그리고 정부의 국정과제에 디지털 성범죄 근절이 포함되었다는 것을 피해자들과 국민들은 아직 기억하고 있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