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로 입국한 예멘 난민의 수용 문제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게재된 ‘난민 신청 허가 폐지’ 청원에는 2일 오후 2시 기준 58만5377명이 동의했다. 해당 글의 게시자는 “불법체류자, 다른 문화 마찰로 인한 사회문제가 여전히 존재한다”며 “구태여 난민신청을 받아 그들의 생계를 지원해주는 것이 자국민의 안전과 제주도의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지 심히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국민청원 홈페이지에서 ‘난민 반대’ 키워드로 검색된 청원 게시글 또한 760건에 달했다.
비판 여론 격화에 정부는 지난달 29일 난민 관련 법적 장치 강화를 약속했다. 난민 신청자 가운데 일부가 경제 목적을 위해 난민 신청 제도를 악용한다는 우려를 반영, 악용 방지를 위한 근거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현재 난민 심사 인원이 4명(통역 2명 포함)뿐인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 6명(통역 2명 포함)을 추가로 투입하기로 했다. 난민심판원을 신설, 이의제기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 정부 발표에도 ‘난민 불허’ 목소리 확산 “강제 출국 조치 필요”
정부의 발표에도 불구, “난민 반대”를 외치는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았다. 정부 발표 다음 날인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인근에서는 ‘불법난민신청자 외국인대책 국민연대(불법난민 대책연대)’ 주최로 ‘난민법 및 무사증 폐지 촉구집회’가 열렸다. 주최 측 추산 1000명(경찰 추산 700명)이 모였다. 불법난민 대책연대는 “국민은 정치·종교·인종적으로 박해를 받는 난민은 거부하지 않는다”면서도 “개인의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어떻게든 입국해 난민법을 악용하는 이주자들을 차단할 제도를 구축하라”고 촉구했다.
예멘이 이슬람 문화권이라는 점을 문제로 삼는 이도 있다. 일부 참가자는 집회 참석 이유에 대해 이슬람 문화권 난민들이 유럽에서 벌인 테러·범죄 등을 꼽았다. 난민의 증가로 인해 치안이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난민을 돕던 독일 여성 인권 운동가가 무슬림(이슬람교도)에게 살해당했다는 기사 등이 확산되고 있다.
예멘 난민 문제와 가장 맞닿아 있는 제주에서도 난민 반대 집회가 개최됐다. 제주난민대책도민연대, 우리문화사랑국민연대 등의 단체도 이날 오후 제주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무사증 제도를 악용해 입국해 난민을 신청한 사람들은 합법적인 입국자가 아니다”라며 “난민 심사 절차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강제 출국 조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난민에 대한 보호 필요”…집·사무실 숙소로 지원하는 움직임도
난민에 대한 반발 여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쟁을 피해 온 난민을 수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같은 날, 서울 지하철 광화문역 한편에서는 ‘난민 반대에 반대하는 집회’가 진행됐다. 주최 측 추산 100여명(경찰 추산 70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가짜 난민은 없다’ ‘난민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라’는 피켓을 들었다.
종교단체와 일부 시민단체 등도 제주 예멘 난민을 돕기 위해 나섰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제주노회 정의평화위원회(정의평화위)는 앞서 “예멘 난민 상황을 중요한 인권지표로 삼아 체류 예멘인을 인류애로 극진하게 환대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지난 달 26일에는 33개 단체가 모인 ‘난민 인권을 위한 범도민 위원회’가 결성됐다. 숙식이 어려운 예멘 난민 신청자들을 위해 집과 사무실을 내주거나 물품 지원 등의 연대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 중인 배우 정우성씨는 “난민도 인권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는 하나의 인격체”라며 “난민에 관한 잘못된 불신을 고쳐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한국에도 ‘정치적 박해’ 등을 피해 국외로 이주했던 ‘한국 출신 난민’을 상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인다. 해외에서 인도적 지원을 받은 만큼 우리도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홍세화 노동당 고문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 79년 유신 말기 최대 공안 사건인 ‘남민전 사건’에 연루돼 프랑스 출장 중 망명을 신청했다. 그는 이후 프랑스에서 20년간 난민 자격으로 생활했다.
▲머나먼 예멘에서 왜 한국까지?…난민법 제정됐지만 인정률은 4.1%
난민에 대한 찬반 논란은 최근 제주도로 500여명이 넘는 예멘인들이 무사증제도를 통해 입국, 난민 신청을 하며 불거졌다. 제주출입국·외국인청 집계 결과, 지난 1월부터 5월말까지 제주에서 난민 신청을 한 외국인은 942명이다. 이 중 515명이 예멘인이다. 현재 제주에는 총 549명의 예멘 난민이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고향 예멘을 떠나 한국으로 온 이유는 무엇일까. 예멘은 지속된 내전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지난 2014년 수니파 정부군이 시아파의 한 분파인 후티 반군과 충돌, 전쟁이 발발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 국가들이 내전에 개입하며 전세는 더욱 확산됐다. 민간인을 포함해 최소 1만3600명이 사망했다. 국제 엠네스티에 따르면 예멘 총 인구 2800만명 중 2200만명이 전쟁으로 인한 기근과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예멘 난민들은 요르단과 이집트, 말레이시아 등 인접한 이슬람 국가로 피난을 떠났다. 그러나 난민이 몰리며 요르단은 국경 폐쇄를 선언했다. 유럽 등도 시리아 내전 등으로 난민 포화 상태를 겪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난민의 취업을 금지했다. 이에 지난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와 제주 간 직항 노선이 생기자 예멘 난민들이 제주도로 몰렸다는 분석이 일었다. 제주도는 입국 허가(비자) 없이 입국이 가능하다. 난민법이 제정된 유일한 동아시아 국가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2년 난민협약에 가입한 후, 94년부터 난민 신청을 받았다. 지난 2011년 아시아 최초로 난민의 지위와 처우를 규정한 난민법을 제정, 지난 2013년부터 시행했다. 난민법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난민 인정자가 아닌 난민 신청자에게도 생계비 등이 지원된다. 입국 6개월 후부터는 취업활동도 허용된다.
다만 난민 인정률은 낮은 편이다. 94년부터 지난 5월말까지 난민신청자는 4만470명이다. 난민신청심사가 완료된 2만361명 중 839명만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인정률은 약 4.1%다. 난민 인정률 세계 평균인 38%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