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잔디지뢰’… 나아지지 않는 상암 논두렁

또 ‘잔디지뢰’… 나아지지 않는 상암 논두렁

기사승인 2018-07-20 00:15:00

“잔디가 작년보다 더 심각한 것 같은데?”

18일 저녁, FC 서울 유니폼을 입은 한 팬이 친구와의 대화에서 의아함을 드러냈다. 이날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선 서울과 전남이 K리그1(클래식) 18라운드 경기를 치렀다.

기자석 인근 VIP석에 앉은 두 사람의 대화는 진솔했다. “월드컵 휴식기에 잔디를 교체한다더니 오히려 상태가 더 XX 맞은 것 같다”는 욕설 섞인 남성의 표현에 다른 남성은 “더우면 어쩔 수 없다던데”라면서도 “이번에 싹 갈아엎는다고 했는데 아닌가”라며 의문부호를 달았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대화 내용은 대부분이 ‘팩트’이다. 혹서기가 되면 깔린 잔디가 견디기 힘든 것도 사실이고 얼마 전 서울월드컵경기장 잔디가 전면 보수작업을 벌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반복되는 문제를 몇 년째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팩트 중 팩트’이다.

이날 경기는 그야말로 잔디가 지배했다. 볼 차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잔디가 깔리는 게 정상이지만 차라리 흙바닥이 낫겠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이날 잔디 상태는 최악이었다. 

‘잔디 지뢰’는 경기 시작 전부터 선수들을 괴롭혔다. 몸을 풀러나온 선수들은 벌써 튀어나온 잔디를 피해 다니기 바빴다. 경기 중에는 움푹 파인 잔디가 볼의 동선을 이상하게 바꿔놓았다. 볼을 잡은 선수들은 꺾는 동작을 할 때마다 잔디에 미끄러졌다. 전반 32분엔 결국 일이 터졌다. 전남 공격수 완델손이 발을 디딘 곳의 잔디가 튀며 크게 넘어지고 말았다. 뒤따라오던 서울 미드필더 김한길도 순간 완델손을 피하지 못하고 몸이 뒤엉켰다. 자칫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장면이었다.

하프타임이 되자 열댓 명의 잔디 요원이 그라운드로 나와 보수작업을 벌였다. 그러나 외관상의 조치일 뿐 효과는 미비했다. 후반 6분경엔 서울 미드필더 황현수가 굴러오는 볼을 잡으려다 솟아난 잔디에 발을 헛디뎌 놓쳤다. 볼은 옆으로 흘러가 드로잉이 됐다. 황현수는 한참을 멍한 표정으로 파인 잔디를 쳐다봤다. 이후에도 선수들은 그라운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전술 운용에 애를 먹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엔 한지형 잔디(양잔디)인 켄터키 블루그래스가 깔려있다. 이 잔디는 섭씨 15~25℃에서 가장 완벽한 상태를 유지한다. 유럽 축구장에서 주로 쓰고 있지만, 우리나라도 2002년 전후로 이 잔디를 깔았다. 근래 한국(조선) 잔디 특유의 누렇게 뜬 모습을 볼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혹서기(7~8월)에 기온이 30℃ 이상 치솟는다. 특히나 이날은 35℃를 넘는 찜통더위가 서울을 덮쳤다. 양잔디는 높은 기온에 매우 취약하다. 결국 이날도 경기장은 여지없이 논두렁이 되고 말았다.

경기 전부터 양팀 감독들은 깊은 우려를 드러냈다. 유상철 전남 감독은 “잔디 상태가 걱정이다. 지난 주말 서울 경기를 봤는데 잔디가 많이 좋지 않아 보였다. 뿌리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해 선수들이 턴을 돌 때마다 그라운드가 파인다”고 말했다. 이을용 서울 감독 역시 “아직 잔디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것 같다”고 전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의 불완전한 잔디는 지난해 이란과의 월드컵 최종예선 때 큰 논란을 빚었다. 원정팀뿐 아니라 홈팀까지도 제대로 된 경기를 할 수 없게 방해했기 때문이다. 질타가 계속되자 서울시설공단 서울월드컵경기장운영처는 ‘철저한 관리’를 공언했다.

그 일환으로 운영처는 올해 경기장이 비는 5월 말부터 7월 초까지 42억원의 예산을 들여 경기장 잔디를 새 잔디로 교체했다. 운영처 관계자는 “잔디를 완전히 바꿔 그라운드에서 경기하는 선수에게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겠다”고 자신감을 비쳤다.

두 달여의 관리기간을 거쳐 K리그가 재개했지만 잔디는 예전과 다를 바 없는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이에 대해 업계 한 관계자는 “서울월드컵경기장은 민간 대관이 의무이기 때문에 각종 콘서트가 잔디 질을 저하시키고 있다. 지난 5월에도 이곳에서 대형 콘서트가 있었다”면서 “또한 경기장 구조상 통풍이나 잔디 온도 조절, 배수에서 관리가 쉽지 않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잔디가 혹서기에 못 견디는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 잔디 관리를 10여년 가까이 해온 한 업계 관계자는 “씨앗을 섞는 지표산파(over-seeding)나 천연-인조 잔디를 섞는 하이브리드 잔디 등을 적극적으로 연구해서 경기장 여건에 맞게 적용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전했다.

상암벌은 대한민국 대표 축구경기장이다. 만약 이처럼 경기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줄 만큼 잔디관리가 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대표성을 유지하기 힘들다. 축구대표팀의 다음 국내 A매치 평가전은 9월로 예정돼있다.

이다니엘 기자 dn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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