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혼밥과 혼술을 즐기는 혼족의 시대다. 명절은 우리 혼족들에게는 여행을 떠나기에 적당한 시간이다. 붐비지만 외로운 도시, 홍콩이야말로 이 짧은 여행의 최적지가 아닐런지.
홍콩은 온갖 냄새로 가득한 도시다. 거리마다 풍기는 음식 냄새와, 이보다 진한 사람 냄새가 차고 넘친다. 이곳을 생각하면 유통기한 지난 파인애플 통조림을 먹어치우던 금성무와 임청하의 레인코트, 왕비의 짧은 머리, 그리고 양조위가 입었을 법한 왕방울 팬티가 떠오른다. 그래서 홍콩의 이미지란 퍽 영화적이다.
“형, 이번 추석에는 집에 안 내려가려고요.” 후배 녀석은 추석이 되기 한참 전부터 이렇게 말했다. 이유야 뻔했다. 가벼운 주머니 사정이나 일가친척들의 결혼 잔소리가 싫단 얘길 것이다. 나는 ‘여행이나 가라’고 대답한 후 짧은 대화를 끝냈다. 그리고 정작 추석 연휴가 시작되자 녀석은 집에서 빈둥대느니 고향에 다녀올 걸 그랬다며 애먼 내게 짜증을 부렸다. “형은 무슨 홍콩을 가래요.” 아니, 홍콩이 어때서.
최근 수일간 홍콩에서 시간을 보냈다. 날씨는 ‘호의적’이지 않았다. 쉴 새 없이 내리던 소나기와 먹구름, 금세 셔츠를 젖게 하던 습기에 겨우 익숙해질 무렵 서울로 돌아와야 했다. 실내는 추울 정도로 에어컨을 틀어놓지 않으면 지긋지긋한 습기를 제거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 안팎의 온도 차이가 크다보니 냉방병을 달고 지냈다.
후배 녀석처럼 여행지로써 홍콩이 좋으냐는 질문을 받으면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견이지만 음식도, 기후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다양성은 뛰어나지만 어디를 가든 넘쳐나는 인파와 비싼 물가, 자극적인 음식을 달갑게 여기지 않을 이들도 적지 않을 터.
그럼에도 좋거나 그 반대의 의미로 ‘홍콩’은 우리에게 친숙하다. 여행 중간 지점으로 잠시 스쳐지나가는 곳이라거나 ‘쇼핑의 천국’ 정도로 치부하기에는 무언가 아쉽다. 그래서 매번 홍콩에서 양가적 감정을 겪고 돌아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도시에 친숙함을 느끼는 이유는 아무래도 영화의 힘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중경삼림’이나 ‘화양연화’를 연출한 왕가위의 영화는 홍콩의 이미지를 중국인과 서남아시아인, 서양인들이 마구 뒤섞여 퇴폐성과 우울함, 기묘한 긴장감이 서린 공간으로 묘사했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우리나라에서 꽤 큰 사랑을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영화에 대한 에피소드도 재밌다. ‘동사서독’을 촬영하던 와중 한 달 남짓한 시간동안 ‘뚝딱’ 만들어버렸다는 후일담. 정작 일 년 이상 공을 들인 영화 ‘동사서독’은 흥행에서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평단의 반응도 시큰둥했다.
여하간 영화는 홍콩을 ‘그린다’. 스토리보다 이미지가 먼저다. 난해한 이미지의 나열이나 현란한 카메라 워크, 무의미해 보이는 대사의 나열은 당시 1997년 중국 반환을 앞둔 홍콩인들의 불안한 심리를 드러내는데 꽤 효과적인 장치로 작동한다.
공간도 재밌다. 혹자는 충칭빌딩을 떠올린다지만, 개인적으로 샌드위치와 샐러드, 콜라 따위를 파는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란 이름의 테이크아웃 식당을 중심으로 맞물리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더 흥미롭다.
비단 이 영향 때문만은 아니지만, 홍콩에 체류할 때면 점심은 이런 간이식당에서 해결하는 편이다. 음료수와 샌드위치 따위를 내동댕이치다시피 내어놓던 점원들은 대개 여성이었다. 그렇다고 왕비 같은 점원을 만나본건 아니었다. 하긴 나도 양조위나 금성무 같은 사람은 아니니 피장파장.
다시 처음 후배 녀석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면, 왜 홍콩이냐는 물음에 ‘여러 이미지가 있어서’라고 대답하고 싶다. 이 도시에서 ‘미드나잇 익스프레스’같은 공간은 도처에 널려있다. 중경삼림이 개봉하던 당시의 홍콩과 지금의 홍콩은 다르다. 아시아 금융의 중심지에서 이제는 창업과 인터넷의 중심으로 업종도 바뀌고 있다.
삶이 팍팍해 명절이나 주말을 기해 여행을 떠나려는 혼족들에게 홍콩은 ‘매우 좋은’ 여행지라고 하긴 어렵다. 그러나 인파의 홍수 속에서 완전한 이방인으로 지내보는 것은 때때로 자신을 찾는 한 방법이 될 수도 있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