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당’(감독 박희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흥선군(지성)이다. 흥선군은 영화 속에서 가장 격렬하게 변하며 관객들에게 욕망이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가장 크게 보여준다. 최근 영화 개봉을 앞두고 서울 팔판로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지성은 흥선군에 관해 ‘가장 애처로운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귀히 태어나 세상을 흔들고 싶었던 마음을 억누르다, 끝내는 울분과 광기에 휘둘려버린 사람이라는 것이다.
“흥선군을 기존에 제가 하던 연기나, 익숙한 패턴으로 접근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간 드라마를 꽤 많이 해왔지만 영화는 드라마와 다르게 좀 더 느린 호흡으로 임할 수 있어서 저만의 솔직한 감정으로 흥선군을 대하고 싶었죠. 어찌 보면 악역이지만 애처로운 사람이에요.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받아 먹으며 목숨을 구걸해야 했던 왕족이고, 인간의 삶을 살기 힘들었겠죠. 그렇게 목숨을 부지했던 근간에는 세상을 흔들고 싶은 마음과 울분, 광기도 있었을 거고요. 하지만 원래는 그만큼 선하고 정의로운 사람이 없었을 거라고 저는 생각했어요.”
지성은 유려하게 흥선군의 생전 과업에 대해 이야기했다. 고종을 왕위에 앉히고 나서도 흥선군은 넓은 아량과 리더십을 가지고 백성을 대했던 사람 같다는 것이다. 경복궁 재건 등으로 무리하게 백성들을 닦달해 민심을 잃은 것에 대해 “전문적인 정치인의 행보가 아니었기에 제게는 그가 더더욱 인간적으로 보였다”고 지성은 표현했다.
“‘명당’에서는 흥선군이 나이가 좀 있어 보이지만, 그 때의 실제 나이는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이에요. 그 나이에 뭘 알았겠어요. 지금도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민생과 경제, 사람들의 삶까지 색이 확연히 달라지잖아요. 그렇듯이 경복궁 재건에 목숨을 걸었던 흥선군만의 이유가 있었다고 저는 생각해요. 하지만 너무 빠르고 이상적인 것을 추구했던 거죠. 영화의 마지막에 이대천자지지를 찾아 다닐때, 얼마나 절박하고 애탔을까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도 그 때 말을 타고 달리는 장면이에요. 절박한 마음을 나타내고 싶어서 심혈을 기울였어요. 대부분 편집됐지만요. 하하.”
‘명당’을 찍으며 지성은 수많은 예전을 떠올렸다. ‘왕의 여자’라는 첫 사극을 했을 때부터, 드라마 ‘올인’을 하며 느꼈던 자극들이 생생하게 살아났다고. 쟁쟁한 배우들 사이에서 연기하며 자극받은 것도 있고, 그 중에서는 가장 신인에 가까운 배우 이원근을 보면서는 자신의 신인 시절을 떠올렸단다.
“사극 발성으로 연기할 때는 첫 사극에서 발성 가지고 감독님께 혼난 것이 생각나요. 이원근씨를 보면 잘 하려고 해도 잘 안 되던 제 신인 시절도 기억나고요. 잘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참 좋아 보이면서도 때론 마음대로 안 돼서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은 지금의 제게도 있다 싶고요. 하하. 분명 신인 시절에는 힘들었는데,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연기하는 모습이 좀 신기해요. 데뷔 이후로 그만한 시간이 지나갔는데도 지금 실감이 안되고, 조금 서글프기도 하죠. 노력하면서 제 인생이 다 간 것 같거든요.”
“연기는 잘하고 못하고를 가릴 수 있는 영역은 아닌 것 같아요. 예전에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데, 어느 정도 연기를 하다 보니 어떤 기준점은 없더라고요. 우는 연기만 해도 그래요. 제가 보기에는 저희 딸이 우는 연기를 어느 누구보다 진솔하게 잘하거든요. 하하하. 진심으로 연기한다는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니 표현 방식도 다르고 느낌도 달라요. 그래서 저도 여전히 고민하고 찾는 과정에 있고요. 잘 하는 배우보다는 관객이 최대한 공감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여러가지 희노애락을 관객에게 대신 드리는 직업이잖아요. 가슴으로 연기할게요.”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