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택시 드라이버’ ‘프랑켄슈타인’ ‘인터뷰’ ‘모래시계’ 등에서 진지한 연기를 선보여온 배우 박건형이 오랜만에 유쾌한 모습으로 무대에 섰다. 쇼 뮤지컬 ‘바넘 : 위대한 쇼맨’(이하 ‘바넘’)에서 청중을 사로잡는 쇼 비즈니스의 대가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 역을 맡은 것. 최근 서울 주흥길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건형은 “변화를 꿈꾸던 중 ‘바넘’을 만났다”고 털어놨다.
“뮤지컬 ‘바넘’은 즐길 수 있는 것이 넘쳐나는 쇼 뮤지컬이에요. 돌이켜 보니, 최근 저도 모르게 계속 진지한 역할만 맡았더라고요. 연기 노선이 너무 진지한 쪽으로 치우쳐졌다는 생각을 하던 중 ‘바넘’ 제안을 받았죠.”
뮤지컬 ‘바넘’은 실존인물인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다. 1980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시작된 뮤지컬로, 한국에선 초연이다. 라이센스는 다르지만 동일한 인물을 다룬다는 점에서 뮤지컬 ‘바넘’은 휴 잭맨 주연의 영화 ‘위대한 쇼맨’과 비교를 피하기 어렵다. 이에 관해 박건형은 “영화를 본 관객들이 뮤지컬 ‘바넘’을 관람하며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영화와 뮤지컬의 장르적 차별성을 줄 수 있는 표현에 중점을 뒀어요. 영화는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지만, 무대는 제한적이죠. 무대에 살아 있는 코끼리가 올라올 수는 없잖아요. 대신 관객이 무대의 어떤 부분에 즐거워할지 끊임없이 생각했죠. 무대의 장점은 계속 수정하고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이니까요.”
박건형이 관객의 즐거움을 위해 준비한 것은 정교한 코미디 연기다. 그는 “정적과 자세, 템포 등이 적절하게 배합된 코미디 연기를 위해서는 정말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고 귀띔했다. 단순한 개인기만으로는 관객에게 웃음을 줄 수 없다는 설명이다.
“코미디를 굉장히 좋아해요. 코미디 연기는 슬랩스틱이 아닌 이상 정말 정교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이를 위해선 정말 많은 연습이 필요한 동시에 의외성에 대해 고민도 해야 해요. 극 중에서 바넘이 오페라 가수 제니 린드와 인사할 때 손등에 키스하지 않고 손을 갖다 대는 건, 이런 고민 끝에 나온 박건형만의 바넘이죠.”
극의 완성도를 위해 필요한 또 한 하나는 동료들과의 호흡이다. 박건형은 함께 무대를 만들어 가는 동료 배우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상대가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꾸준히 지켜보고 함께 해결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
“저로선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말이지만, 후배들 입장에선 그마저도 어려운 시간일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후배들을 오래 지켜본 후에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요. 이 작품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묻고, 그 부분을 부각하기 위해선 저와 어떻게 호흡을 맞춰야 하는지 이야기하죠. 힘든 사람에게 ‘힘내라’라는 말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요. 왜 힘든지를 파악하고 진짜 해결책을 주고 싶어요. 그 사람의 어려움이 곧 우리 작품의 어려움일 수 있으니까요.”
관객이 극장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즐거웠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번 공연의 안내 멘트를 직접 작성했다는 박건형은 쇼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진심’이라고 강조했다. 쇼에 진심과 철학을 동반하지 않으면 중심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쇼 뮤지컬은 관객들과 호흡하며 극을 만들어 가는 부분이 커요. 배우들이 마음을 열고 먼저 다가가면 관객들도 우리와 함께 해줬으면 좋겠어요. 회를 거듭할수록 배우들이 능수능란해지는 만큼, 더 많은 볼거리를 더해가고 싶어요.”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 / 사진=박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