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한지민이 ‘미쓰백’(감독 이지현)의 시나리오를 처음 받아봤을 때 고민한 것은 ‘내가 이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을까’가 아니었다. “시나리오를 보고 나서 이 캐릭터를 제가 제안받아서 시나리오가 제 손에 들어온 건지, 회사에서 좋은 시나리오를 찾아 제 손에 쥐어준 건지부터 물었어요. 제게 그동안 제안이 들어온 역할들과 색깔부터 달랐거든요. 의아해서 ‘정말 나한테 들어온 거 맞아?’하고 물었죠.” 영화 개봉을 앞두고 서울 팔판로의 한 카페에서 마주앉은 한지민의 말이다.
“새벽에 깨서 ‘미쓰백’ 시나리오를 봤어요. 시간이 그래서 감성적으로 느끼기도 했겠지만, 어딘가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처럼 가깝게 다가왔죠. 가장 처음 느꼈던 건 상아와 지은이가 어린 나이에 처한 상황에 대한 미안함이었어요. 그리고 어른으로서 안아주고 싶었죠. 제가 연기를 할 수 있고 없고 여부보다는 ‘이 작품을 꼭 만나고 싶다’는 생각부터 했어요.”
‘미쓰백’속 한지민이 맡은 백상아는 등장부터 대단하다.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이를 악물고 세차장에서 걸레질을 한다. 불콰한 얼굴로 국밥집에서 대낮부터 소주를 기울이는 모습에, 한밤중에 집에서 쫓겨난 어린아이를 데리고 경찰서가 아닌 포장마차로 가 담배를 피우는 상아는 확실히 그가 그간 맡아온 캐릭터들과 다르기는 다르다. 혹자는 그녀에게 ‘망가졌다’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한지민은 “망가진 것과 연기는 다르다”고 못박았다.
“저는 ‘아는 와이프’를 할 때도 ‘너 그렇게 망가져도 되겠어?’라는 걱정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기본적으로 어떤 매체에서나 여자 주인공들은 예쁘게 나오곤 해요. 여자 캐릭터가 뭔가 보여줄 만 한 장점들은 드라마나 영화라는 시장 특성상 많지 않거든요. 드라마도 거친 여자 캐릭터를 다루기가 쉽지 않죠. 특히 여성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공감력을 뽑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리만족을 시키는 것도 중요하게 여겨지니까요. 그러다 보니 배역이 전형적인 여자 주인공들의 장점을 안 가지고 있을 때, ‘망가짐’이라는 단어가 흔히 쓰여요. 재미있죠.”
이른바 ‘룩’(Look)은 연기에 있어 배역과 뗄 수 없는 고민점이다. 성격을 그대로 나타내주는 하나의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배우들은 자신들이 연기할 때 스스로가 ‘어떻게 보일까?’라는 고민을 항상 동반하지만 막상 여배우들에게는 그 고민과 결과가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지적을 한지민은 했다.
“상아도 그렇고, ‘아는 와이프’도 그렇고 저는 제가 맡은 역이 처한 상황과 감정에 가장 알맞는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어요. 그런데 화장을 버리면 ‘예쁨을 내려놨다’라고 하고, 악을 쓰면 ‘망가짐에도 불구하고’라는 문구가 쓰이더라고요. 제가 배우라 공식석상에서는 화려하게 보이는 일도 많고 해서 그런가봐요. 하지만 사실 ‘내가 어떻게 보일까?’라고 생각하는 순간은 연기할 때는 가장 방해가 돼요. 관객들도 수준이 높아서 배우가 역할과 맞지 않는 룩을 보이면 바로 알아차리죠. 감정도 바로바로 전달되고요.”
‘미쓰백’이 베일을 벗은 후 한지민에게 가장 많이 붙은 질문 중 하나가 ‘흡연’이다. 영화 속 상아는 헤비 스모커이며, 한지민 또한 영화 내내 흡연을 한다. 첫 등장부터 영화의 엔딩까지 담배를 피우는 상아이기 때문에 한지민은 당연하게도 흡연에 대한 질문을 예상했고, “’모범 답안’을 준비했는데 들어 보시겠냐”고 웃었다.
“영화에 임할 때부터 흡연이나 ‘망가짐’이라는 이슈를 예상하긴 했죠. 하하. 어쩔 수 없이 여배우의 흡연에 관해 관객들이 궁금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건 이해해요. 실제의 제가 흡연자인지 아닌지까지도 궁금해들 하시죠. 하지만 이런 사전 정보가 ‘미쓰백’을 감상하는데 도움되지는 않아요. 그저 저는 백상아로서 행동 하나하나와 손짓 하나하나까지 최선을 다했을 뿐이에요. 영화를 보는 분들은 영화로만 저를 평가해주시지 않을까 기대하고 싶어요.”
“예전의 한지민이 대중에게 보여준 이미지가 ‘미쓰백’에 오히려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있어요. 하지만 제가 기존의 이미지를 탈피했다는 느낌보다는 배우로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태도로 임했어요. 거친 이미지를 가져본 적이 없으니 오히려 연기력을 잘 보여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죠. 대중이 ‘미쓰백’을 보고 ‘아, 한지민 애썼네’라는 인상은 안 가지게 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미쓰백’은 오는 3일 개봉한다.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