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들이 잇따라 재판에 출석하지 않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정계선 부장판사)는 5일 오후 2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을 연다. 피고인인 이 전 대통령은 재판에 불출석할 예정이다. 이 전 대통령은 자동차 부품회사 다스의 자금 349억원을 빼돌리고 다스 미국 소송비 대납 명목으로 삼성으로부터 111억원대 뇌물을 받는 등 모두 16가지 혐의를 받는다.
이 전 대통령은 전날 변호인을 통해 TV 생중계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불출석 사유는 크게 세 가지다. △건강 상태 악화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일부 방청객의 과격 행동으로 경호 문제 발생 가능 △전직 대통령으로서 법정에 드나드는 장면이 전파를 타고 해외에 공개되면 국격 유지 및 국민 단합에 악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에 대해 공판연기, 궐석선고, 강제구인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을 상대로 법원이 강제구인을 하기 부담스러운 만큼 궐석재판 가능성이 높다.
전직 대통령이 사법부를 무시하는 행태를 보이는 것은 처음이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국정농단 혐의로 재판을 받던 중 변호인단을 사임시키고 ‘재판 보이콧’을 선언했다. 정치 보복이라는 입장이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재판에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다. 전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고(故) 조비오 신부를 ‘거짓말쟁이’라고 지칭해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광주에서 재판을 받을 수 없다”는 등 핑계를 대며 재판을 세 차례나 연기해 ‘시간 끌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시민들은 재판에 불성실하게 임하는 전직 대통령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서울역 역사 내에서 만난 서울 동작구 주민 김명철(73)씨는 “전직 대통령이 재판에 불출석하는 것은 올바른 처신이 아니라고 본다”고 고개를 저었다. 김씨는 “불출석 사유도 죄다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떳떳하면 재판에 나와서 국민 앞에 해명해야 한다. 이길 자신이 없으니까 얼굴을 비추지 않는 것”이라며 “원래 대통령감이 아니었다. 다스가 자기것이 아니라는 이 전 대통령의 주장은 완전 ‘헛소리’”라고 목소리 높였다.
충남 천안 주민 회사원 박모(26)씨는 “전직 대통령이 내세우는 ’건강상 이유’라는 핑계는 이제 지겹다”고 말했다. 외국인 유학생 폴른(미국·24)씨는 “혐의가 16개에 달하는데도 재판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라며 “국민을 기만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내놨다.
반면 재판부가 전직 대통령을 배려해 줄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거주하는 직장인 진모(40)씨는 “전직 대통령이기 때문에 일반 시민과는 다르게 재판을 진행하는 것이 일부 이해는 간다”며 “그러나 피고인이 재판에 성실히 임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음에는 이 전 대통령이 당당히 재판을 받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오승진 단국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일반 시민과 같이 전직 대통령도 강제 구인 대상이지만, 법원이 일부 배려한 측면이 있다”며 “통상 재판에서 피고인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며 감형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선고를 받을 때 자신의 모습이 TV에 생중계 되는 것을 원하지 않은 마음이 더 큰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재판 불출석은 결국 이 전 대통령 본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용, 신민경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