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컬 그룹 노을의 멤버 강균성은 새 음반을 홍보하는 자리에서 “기사 제목이 자극적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극적인 제목이라야 사람들이 많이 볼 것이란 계산에서였다. 이미지보다는 화제성을 택하겠다는 의중에서, 그의 질긴 생존력이 느껴졌다. 오해는 마시길. 17년 동안 이어져 온 노을의 ‘생존’은 본받을만한 것이었다.
노을의 시작은 화려했다. JYP엔터테인먼트의 박진영 프로듀서가 팀을 꾸렸고 대기업이 투자했다. 2002년 낸 데뷔곡 ‘붙잡고도’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노을은 1집 발매 이후 다시 ‘연습생’ 신분이 됐다. 1집 활동으로 낸 수익이 투자에 미치지 못해서였다. 당시는 CD에서 디지털 음원으로 음악 유통 채널이 바뀌던 시기였다. 불법 음원 다운로드가 극성이라 음원 수익이 시원치 않았다. 불운한 시대를 탓할 법도 한데, 노을은 “덕분에 겸손을 배웠다”며 웃었다. 전우성은 “그래도 우리가 많이 알려졌으니 시작이 좋았다”라고 했다.
위기는 또 있었다. 2006년 JYP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이 끝난 뒤, 새 소속사를 찾지 못해 5년의 공백이 생겼다. 나성호는 그 사이 외교통상부에서 인턴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가 다시 노을로 돌아온 데에는 멤버들의 공이 컸다. 이들은 ‘한 번만 더 해보자. 그래도 안 되면 잡지 않겠다’며 나성호를 설득했다. 마침 새로운 소속사도 만났다. 그 때 발표한 노래가 ‘그리워 그리워’다. 이 곡이 인기를 얻으면서 노을은 두 번째 도약에 성공했다.
“우리가 계속 잘 되기만 했으면 한 번 안 됐을 때 굉장히 좌절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1집 발표 후 연습생으로 강등돼, 2집이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계속 연습을 해봤으니까요. 안 됐을 때의 좌절이 덜해요.” (이상곤)
“굴곡이 많다는 게, 지나고 나서 보니 굉장한 복이더라고요. 내려가 봐야 겸손함을 배우고 지금 내가 누리는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게 돼요. 그리고 그 때 배운 것들이 음악으로도 승화되죠. 그래도 이젠 오르막길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높이 올라가고 싶지도 않아요. 그냥 동산 정도? 하하하.” (강균성)
노을의 지난 16년은 새 음반 ‘별’을 만드는 데 좋은 거름이 됐다. 음반 제목인 ‘별’은 우리네 인생을 상징한다. 강균성은 “별은 누가 더 큰지, 누가 더 빛나는지 비교하지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 있을 뿐”이라며 “우리 또한 그저 일상을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대하다는 얘기를 전달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하루 한 달 일 년이 / 모두 모여서 날 만들어’라는 수록곡 ‘별의 시작’ 가사는 음반의 주제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음반이 나온 지난 5일은 멤버들에겐 기적 같은 날이었다. 타이틀곡 ‘너는 어땠을까’가 음원사이트 엠넷닷컴에서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강균성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즐거워했다. 노래가 잘 된 덕분에, 소속사에서 앞으로 싱글 두 장 정도는 더 내줄 것 같단다. 다음 달 단독 콘서트를 앞둔 이들은 ‘매진’이라는 새로운 기적을 꿈꾼다.
“팬덤이 큰 가수들은 안 그럴 텐데, 우린 콘서트를 열 때마다 걱정돼요. ‘몇 분 만에 매진!’, 이런 일이 저희한텐 없거든요. 하하. (이상곤이 ‘몇 번 있었다’고 하자) 그건 기적 중의 기적인 거고. 그래서 저흰 공연 당일까지 (표를) 팔아야 해요. 게다가 이번엔 규모가 큰 공연장을 잡아서 걱정이 많아요.” (강균성)
“요즘엔 차트 순위가 빠르게 변한다고들 하잖아요. 하지만 하위권에 있는 음악 중엔 차트에 오래 머물고 있는 노래도 많거든요. 진짜 좋은 음악은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우리도 반짝하는 1위보단 오래 가는 2위가 좋아요.” (이상곤)
노을은 자신들이 ‘어쩌다 보니’ 장수 그룹이 됐다고 했다. 장수 비결에 관한 질문에, 장난기 많은 강균성과 이상곤이 “그룹을 만들 땐 인원은 4명 정도가 적당하다” “사람이 많으면 (제작자가) 고생이다”라며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 나성호는 진지한 얼굴로 “멤버들이 즐겁게 노래하는 것이 (팀을 오래 유지하는 데에)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말수가 많지 않은 전우성은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성격은 서로 다르지만, 그런 네 사람이 퍼즐처럼 맞아들어 지금의 노을을 만들었다.
“노래가 꿈인 시절이 있었어요. 반면 돈과 인기를 찾아갈 때도 있었고요. 시간이 조금 더 지나다보니까 내가 뭘 향해 가야 할지 보이더라고요. 지금은 우리 음악을 통해 한 사람이라도 살리고 싶다는 거, 그런 마음으로 음악하고 있어요.” (강균성)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