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배우’ 이야기를 꺼내자 배우 이시언은 손사래를 쳤다. MBC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하며 얻은 별명이자 그를 상징하는 수식어지만 말도 안 되고 너무 부담스럽단다. 가끔 마주치는 배우 선배들이 “대배우”라고 부를 때마다 부끄러워 죽을 지경이라며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래서 차라리 촬영장에서 대기를 많이 한다는 의미의 ‘대기 배우’가 더 좋단다. 대기만 하는 배우로 인신공격성 댓글도 많이 받지만, 그게 부끄러운 것보다 낫다고 했다.
지난 20일 서울 논현로 한 카페에서 만난 이시언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던 모습과 완전히 달랐다. 인터뷰 내내 차분하고 작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연기에 대한 자신감이나 욕심내기보다는 자신을 낮추고 집중해서 취재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최근 종영한 OCN ‘플레이어’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드라마에서 선보인 자신의 연기에 대해 부족하다고 느끼는 점을 있는 그대로 말해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럴 듯하게 포장하거나 적당히 넘어가는 것보다 스스로 인정하는 태도가 인상에 남았다.
“‘플레이어’에서 천재 해커 역할을 맡았는데 제 스스로도 만족하지 못했어요.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지 않았나 싶어요. 너무 튄다는 생각도 했고요. 감독님이 디테일을 잡아주셔서 드라마 후반부에는 그런 얘기가 안 나왔지만 초반엔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드라마를 본 친구들까지 그런 얘기를 했을 정도니까요. 사실 처음엔 사람들이 ‘해커’를 떠올렸을 때 생각하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제가 더 형식화시켜버린 것 같아서 아쉬워요.”
스스로 연기적인 아쉬움을 느끼는 작품이지만 ‘플레이어’를 선택한 걸 후회하진 않는다. 그만큼 내용이 좋았고 꼭 해보고 싶었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는 대본이 정말 좋았어요. 순전히 내용만 보고나서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내용이 멋있잖아요. 네 명의 꾼들이 멋있게 나쁜 사람들을 뒤통수치는 작품, 한 번 해보고 싶잖아요. 영화 ‘오션스 일레븐’ 느낌도 나고요. 2년 전쯤부터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장르물이어서 통쾌한 장면들이 많았는데 연기하는 저희도 통쾌한 쾌감을 많이 느꼈어요.”
이시언은 평소 차기작을 고를 때 캐릭터보다는 좋은 작품에 중점을 두는 편이다. 많은 역할을 맡고 싶은 욕심도 있지만 급하게 생각하진 않는다. 마음이 급하면 안 좋은 연기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배우마다 성향이 다르겠지만 전 역할보다 내용을 먼저 보는 편이에요. 좋은 이야기가 있으면 제가 거기서 작은 부분 하나라도 할 때 굉장히 영광스럽고 좋아요. tvN ‘라이브’가 제게 그런 느낌이었죠. 그래도 다른 옷들을 입어보고 싶은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조바심 내지 않고 천천히 기다리는 느낌이 좋다고 생각해요. 막상 새로운 옷을 입혀놨는데 제 욕심이 과하면 실수하거나 안 좋은 연기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이제야 그런 것들을 느끼기 시작하는 단계가 온 것 같아요.”
최근 이시언은 자신이 예전보다 소심해졌다는 걸 느낀다. 잃을 게 없다는 생각으로 살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젠 말 한마디 한마디를 조심해야겠다고 느낀다. 지켜야 할 주변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대중의 주목이 행복한 동시에 무섭다는 것도 느낀다. 그래도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하는 건 괜찮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도 좋지만 배우로서 얻는 것도 많기 때문이다.
“배우라면 당연히 예능 출연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겠죠. 하지만 전 괜찮은 것 같아요. 오히려 ‘나 혼자 산다’는 제게 실보다 득이 더 많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해요. 드라마 ‘라이브’에 출연한 것만 봐도 그래요. 노희경 작가님이 ‘나 혼자 산다’를 보다가 제가 강남일 역할을 연기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셨다고 들었거든요. SBS ‘귓속말’에서 짧게 연기한 것도 정말 행복했는데, 그것도 ‘나 혼자 산다’ 출연 이후의 일이고요. 정말 ‘나 혼자 산다’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연기 폭이 더 넓어졌다고 생각해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 사진=비에스컴퍼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