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여경래 셰프 “한국이 주도하는 중식의 시대 올 것”

[쿠키인터뷰] 여경래 셰프 “한국이 주도하는 중식의 시대 올 것”

기사승인 2018-11-23 01:00:00


불 앞에서 경력을 시작한 한 남자는 어느덧 대가의 자리에 올랐다. 계단의 끝에서 남자는 이제 후배들을 위해 길을 넓히고 있다. 중식요리의 대가, 여경래(呂敬來) 셰프 이야기다.

지난 19일 서울 그랜드앰버서더서울풀만 홍보각에서 만난 여 셰프는 여전히 불 속에서 살고 있었다. 바쁜 점심시간이 지나고 잠깐의 토막시간에 만난 그의 조리복에는 ‘李錦記(이금기)’라는 글자가 선명히 수놓여 있었다.

현재 여 셰프는 세계중식업연합회 부회장역을 비롯해 한국중국요리협회장, 글로벌 소스브랜드인 이금기 요리고문역을맡고 있다. 여 셰프가 이금기와 공식적으로 연을 맺은 것은 2007년 요리고문역을 맡으면서부터다. 이후 이금기 청년요리사 국제대회 심사위원, 이금기 영셰프 국제 중식 요리대회 심사위원을 맡으면서 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외에도 중국, 대만,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홍콩, 마카오 등 각종 국제요리대회에 출전해 국제적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특급 요리사다. 특히 그가 2007년부터 근무해온 홍보각은 세계적인 레스토랑 평가서인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7·2018에 추천 레스토랑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여 셰프는 홍보각 오너셰프와 이금기 요리고문이라는 중책을 역임하면서도 다양한 방송활동도 나서고 있다. 그런 바쁜 와중에도 놓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후배 양성’이다. 

지난 9월 홍콩에서 열린 ‘2018 이금기 영셰프 국제 중식 요리대회’에서 국내 중식 100년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인으로 수상한 정덕수 셰프 역시 여 셰프의 제자다. 여 셰프는 한국인들이 만드는 중식에 대한 가능성을 엿봤다고 강조했다. 

“‘영셰프’ 대회였기 때문에 젊은 셰프들에게 바란 것은 ‘창의력’이었습니다. 이번에 정 셰프가 대상을 받게 된 이유 중에 하나가 창의력에 기반해 요리를 창작했기 때문입니다. 요리를 눈으로 먹고, 코로 먹고, 입으로 먹는다는 말이 있는데 요리 대회 같은 경우는 특히 비주얼도 중요합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정 셰프의 요리가 돋보였고요.”

여 셰프는 이번 수상이 한국 중식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표현했다. 그간 100년간의 한국 중식 역사에서 순수한 한국인이 국제 중식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한국문화에 뿌리깊이 박혀있는 중식에 대한 ‘멸시’ 또한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내비쳣다. 

“한국인 중식 요리사가 세계 중식요리대회를 석권했다는 것은 고무적이면서 희망적인 일입니다. 국내에서 짜장면이 하루 700만그릇이 팔린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중식은 우리 일상에 깊히 들어왔지만, 일각에서는 ‘짱개’라고 비하한다든지, 중식당은 더럽다든지 하는 그런 문화도 묻어있죠. 정 셰프의 수상을 전화점으로 중식에 대한 안좋은 고정관념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개선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 셰프가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후배양성이다. 작게는 주방의 규율을 세우는 것부터 크게는 대회 진출까지 크고 작은 일들을 챙긴다. 

“노력이 중요하지만 사람마다 차이는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다르게 기회를 줍니다. 빠르게 흡수하는 사람에게는 그 속도에 맞춰 빨리 가게 해주는 것이 좋은 것처럼요.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최대한 조절해서 일을 시키고 가르쳐야 합니다. 저는 스스로 시기적절하게 가르치는 것이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빨리 갈 사람은 빨리, 느리게 가는 사람은 느리게 갈 수 있게끔 도와주는 거죠.”

홍보각 주방에는 이른바 ‘짬’에 의한 규율이 없다. 특히 중식주방은 군기가 세 아직 경력이 일천한 신입이 불 앞에 서거나 웍(중식 냄비)를 만졌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홍보각에서는 근무시간이 아닌 쉬는시간이라면 자유롭게 연습할 수 있는 분위기가 갖춰져있다. 현재 주방 선배들이 만든 분위기지만, 이를 유도한 것은 여 셰프다. 

물론 하나부터 열까지 차근차근 가르쳐주는 스타일은 아니다. 주방은 일터이고 셰프들은 모두 프로다. 자신이 필요성을 절감하고 배울 때에야 자신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직원들에게 동기부여를 많이 주는 편입니다. 이걸 (요리를) 이렇게 해봐라, 이야기하면 직원들은 그걸 고민하면서 자기계발로 이어지니까요. 그걸 얼마나 고민하고 연습하는지는 자기 몫입니다. 기술자들은 가만히 앉아서 가르쳐줄 것을 기대하지 말아야합니다. 학교가 아니니까요. 저는 여러 국제요리대회 등에서 심사위원을 오래했기 때문에 주요 심사포인트에 대해 조언을 주는 편입니다. 그걸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은 오로지 본인이 해야할 몫이고요.”

여 셰프는 아직도 한국의 중식에 대해 발전적인 요소가 많다고 평가했다. 이는 우리의 문화가 녹아낸 중식이 본토(중국)과는 달리 독자적으로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보통 ‘중식’ 하면 광둥요리, 북경요리, 사천요리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것들은 ‘중식’이 아니라고 봅다. 이미 하나의 요리로 완성됐기 때문에, 중식이 아닌 ‘북경요리’인 거예요. 반면 한국에 들어온 중식은 그런 분파가 없습니다. 중국 각 지역의 요리가 이래저래 섞여 독자적으로 발전된 중식이죠. 저는 그걸 ‘한중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북경요리, 광둥요리는 몰라도 한중체는 자신있어요. 우리가 만든 음식은 한국사람이 좋아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대가는 중식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다. 일가(一家)를 이룬 그가 보고 싶은 것은, 한국인이 만드는 중식이 얼마나 발전할까 하는 것이다.

“앞으로 한국인이 만드는 중국요리가 어떤 방향으로 갈지 기대됩니다. 예전보다 훨씬 고무적이고 발전적입니다. 정 셰프의 우승이 하나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 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실력있는, 잘 하는 후배들이 많습니다. 다만 드러나지 않은 것 뿐입니다. 앞으로 그런 후배들을 세상에 많이 알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조현우 기자 akg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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