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을 겨냥한 ‘화염병 테러’ 사건이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평이 나온다.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28일 김 대법원장을 향한 테러에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며 “사법부는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안 처장은 “심판에 대한 존중이 무너지면 게임이 종결될 수 없고 사회는 평화를 유지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사법 불신에 근거한 사건이라고 생각하지 않나’는 질문에 안 처장은 “그 점도 깊이 있게 생각한다”면서도 “아무리 병소를 많이 찾는다고 해도 해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명의는 환부를 정확하게 지적해 환자를 살리는 것”이라고 답했다. 사법농단 사태를 법원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편이 낫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27일 김 대법원장이 탄 승용차에 화염병을 던진 남모(74)씨를 붙잡아 특수공무집행방해, 현주건조물등방화, 화염병 사용 등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조사했다.
남씨는 같은날 오전 9시6분 김 대법원장을 태운 관용차 에쿠스 리무진을 향해 시너가 든 500ml 패트병에 불을 붙여 던졌다. 불은 대법원장 승용차 오른쪽 뒷바퀴와 남씨 손에 옮겨붙었다. 현장에 근무하던 청원 경찰들이 소화기로 진화하고 남씨를 제압했다. 김 대법원장 신변에도 이상은 없었다. 경찰은 남씨 소지품에서 인화물질이 든 패트병 4개를 더 발견해 압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조사 결과 남씨는 정부 상대 민사소송에서 3심까지 패소하자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강원 홍천에서 유기축산물 사료를 제조, 판매하던 남씨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친환경 부적합 처분을 내려 손해를 봤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냈으나 1, 2심에서 패했다. 대법원도 심리불속행기각 처리했다. 남씨는 경찰에 3개월 전부터 대법원 정문에서 1인 시위를 하면서 대법원장 차량번호와 출근시간을 미리 확인했다고 진술했다.
사법부 수장을 향한 테러는 사상 초유의 사태다. 이번 테러 원인을 단순히 개인적 원한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높아진 최근 사회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는 평가다.
재판부 위상은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사법부 이익을 지키기 위해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을 미끼로 거래한 정황이 낱낱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사법부 내부에서도 위기의식을 느끼고 사법농단 연루 판사들에 대한 탄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앞서 지난 19일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사법농단에 연루된 현직 판사에 대한 탄핵이 검토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13일 대구지법 안동지원 법관 6명이 “형사 절차 진행과는 별개로 헌법이 예정하고 있는 사후 교정 절차인 탄핵 절차 진행을 촉구해야만 한다”며 “이는 우리 사법부를 인권과 정의의 최후의 보루로 여기고 있는 대부분 국민들에 대한 법관들의 최소한의 실천적 의무”라는 입장을 밝혔다.
경찰은 구체적 범행 동기와 공범 및 배후 여부를 수사한 뒤 남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또 경찰은 3부 요인에 대한 경비를 강화하기로했다. 경찰청은 대법원과 대법원장 공관 등 주변에 병력을 더 늘리고 돌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핫라인을 구축하는 등 후속 조치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