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신인이 조용하게 등장했다. 영화 ‘폭력의 씨앗’(감독 임태규) ‘도어락’(감독 이권)에 출연하며 충무로와 영화 팬들 사이에 이름을 알린 배우 이가섭의 이야기다. ‘폭력의 씨앗’으로 국내 모든 영화제 신인상 후보에 이름을 올린 그는 대종상영화제에서 신인남우상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올해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신인 배우임을 입증한 셈이다.
최근 쿠키뉴스 사무실에서 만난 이가섭은 “충무로의 기대주”라는 말에 고개를 저으며 손사래를 쳤다. “연기에 대한 호평이 부끄럽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직 부족한 것이 많다”고 말문을 열었다. 스크린에서 보여준 차분하면서도 강렬한 얼굴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제가 연기를 잘해서 상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영화는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작업인 만큼, ‘폭력이 씨앗’을 만든 모든 스태프가 잘해주신 덕분에 제가 칭찬과 좋은 상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신인상을 받고 공식석상에서 스태프들과 부모님께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특히 부모님께 ‘사랑한다’는 소감을 전할 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었죠.”
이가섭이 처음부터 연기자를 꿈꿨던 것은 아니다. 어릴 적부터 오랫동안 바둑을 뒀던 그는 수학능력시험을 남겨 두고 갑작스럽게 “연기를 하겠다”고 진로를 바꿨다. 예상치 못한 아들의 선언에 부모님은 반대를 하고 나섰다. 이가섭은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한 편지에 대학 연기영화과 입시전형을 모두 적어 냈다”며 웃음을 보였다.
“부모님께서는 제가 한 달 정도하고 그만 둘 것이라고 생각하셨대요. 지금은 묵묵히 저를 응원해 주세요. 부모님은 제 조력자이자, 원동력이에요. 예전엔 뉴스만 보시던 아버지가 요즘엔 드라마와 영화를 챙겨보시고 저에게 먼저 연기에 대한 말을 건네기도 하세요. 감사한 일이죠.”
10여 년간 바둑을 뒀던 경험은 연기자 이가섭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이에 관해 이가섭은 다음 수를 고르는 것처럼 한참을 생각하다가 “명확하게 정리해서 말하긴 어렵지만, 현재와 연기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바둑과 연기는 내적인 것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비슷해요. 바둑이 다음 수를 생각하며 흑백의 돌로 표현하는 것이라면, 연기는 몸짓으로 내적인 것을 표현하는 예술이죠. 입시를 준비하며 연기를 처음 배울 때, 다양한 창구를 열어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 매료 됐어요. 그때까지 해보지 못한 것들을 경험하며 연기가 저에게 ‘요상하게 잘 맞는다’고 생각했죠.”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도어락’은 이가섭의 첫 상업영화 작업이었다. 그는 이 영화에서 관리인 한동훈 역할을 맡아, 제 몫을 해냈다. ‘도어락’에서 공효진, 이천희, 조복래 등 멋진 선배들과 함께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는 그는 2019년에도 배우로서 좋은 모습을 선보이겠다고 전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배우’에 가까워지기 위해 여러 경험을 하고 싶다는 각오도 덧붙였다.
“최근 2019년 다이어리를 선물 받았어요. 1월 1일자 옆에 ‘부족함을 채우는 한해’라는 문구를 적어놨죠. 저에게 내년은 그런 시간이 될 것 같아요. 상을 받아야 한다는 목표를 세우기보다, 조금 더 즐기면서 연기를 하고 싶어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배우는 눈이 좋은 배우예요. 관객이 볼 때, 눈에 이야기가 담긴 연기자요. 그러기 위해선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겠죠. 굉장히 어렵겠지만, 조금씩 부족함을 채우다 보면 언젠가 관객들이 제 눈에서 이야기를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 / 사진=사람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