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개봉한 한국 영화는 998편이다. 외화는 1983편. 전체 누적 관객은 2억 명을 돌파했으며 6년 연속 영화관객 2억명 돌파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쯤 되면 전 세계에서 가장 영화를 사랑하는 나라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기록이 가득한 만큼 사건도 많았다. 다사다난했던 2018년, 1000만 관객을 달성한 단 하나의 영화와 영화계를 뒤흔든 굵직한 사건을 3개 꼽았다.
▲‘신과 함께’의 1000만 관객… 한국 영화의 새로운 패러다임
지난해 12월 개봉한 영화 ‘신과함께-죄와 벌’(감독 김용화)은 화려한 특수효과와 배우들의 열연, 남녀노소 공감할 수 있는 ‘죽음’에 대한 테마까지 합쳐져 올해 첫 1000만 관객 영화가 됐다. 이 기세를 몰아 지난 8월 개봉한 ‘신과함께-인과 연’또한 1227만명의 관객을 동원해 흥행 1위에 등극했다. 대만과 홍콩 등 해외 시장에서도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으며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시리즈 두 편 모두 1000만 영화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신과함께’ 시리즈는 높은 인기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VFX효과를 아낌없이 동원해, 해외 기술력이 아닌 한국 기술에 의지하면서도 높아진 관객 기준에 맞는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 영화계 뒤흔든 ‘미투’운동, 거장과 배우의 추악한 민낯
2007년 미국의 사회운동가 타라나 버크가 제안한 ‘미투’(Me too, 나도 말한다)운동은 2017년 미국의 거대 영화자본가 하비 와인스타인의 위력에 의한 성추행 사건이 여배우들에 의해 드러나며 본격화됐다. 국내에서는 올해 1월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부망에 ‘나는 소망합니다’라는 글을 통해 검찰 내 성폭력을 폭로하며 들불처럼 번졌다. 영화계도 예외는 없었다. 지난 3월 김기덕 감독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다수의 여성이 MBC ‘PD수첩’을 통해 인터뷰를 하고 그의 만행을 폭로하며 김기덕 감독은 ‘미투’논란에 휩싸였다.
김기덕의 페르소나로 오랜 시간 활약한 배우 조재현도 예외는 아니었다.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그에게도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가 있었고, 초반에 그는 의혹을 부인했으나 이어지는 피해자들의 폭로에 잘못을 인정하고 작품에서 하차했다. 운영 중인 연극 제작사 수현재컴퍼니도 폐업했다. 이후 지난 10월에는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로 고소당했다.
뿐만 아니다. 배우 조민기의 경우 자신이 출강 중이던 학교의 학생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다수 폭로됐다. 이후 그는 최초 경찰 출두 조사를 앞두고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 영화계에 분 ‘여풍’(女風)…. 관객들 응원에 힘입은 ‘미쓰백’의 흥행
‘여배우만 나오는 영화는 망한다’는 이야기는 옛말이다. ‘미투 운동’의 반등효과일까, 아니면 페미니즘 덕분일까. 혹은 둘 다일수도,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여배우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들이 화제성을 과시했음은 물론, 흥행에도 성공했다. ‘영혼 보내기 운동’도 등장했다. 순전히 여성 영화를 원하는 관객들 덕분이다.
한지민 주연의 영화 ‘미쓰백’이 가장 대표적인 예다. 10월 개봉한 ‘미쓰백’은 당초 한지민의 원톱 주연이라는 이유로 투자 단계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개봉 당시에도 ‘미쓰백’의 흥행을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관객들은 오랜만에 영화시장에 나온 여성 원톱 주연의 웰메이드 영화를 격렬하게 반겼다. 남자 배우에게 의지하지 않고, 남자 배우의 들러리가 아니며, 남자 배우 없이 홀로 영화의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여성을 위해 관객들은 ‘영혼 보내기 운동’을 펼쳤다. 본인이 보러 가지 못해도 영화의 표를 예매해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데 보탬이 되겠다는 운동이다. 이 덕분일까. ‘미쓰백’은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주연배우인 한지민 또한 아시아스타어워즈 마리끌레르상, 런던동아시아영화제,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청룡영화상,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각종 시상식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휩쓸었다.
이밖에도 손예진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 ‘협상’, 김혜수의 ‘국가부도의 날’등이 흥행했으며 김태리 주연의 ‘리틀 포레스트’ 각종 신인 여우상을 받은 김다미의 ‘마녀’등이 주목받았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그린 김희애 주연의 ‘허스토리’와 김향기의 ‘영주’ 등도 잘 만든 영화로 손꼽혔다. 홀로 사는 여자의 공포를 그린 공효진의 ‘도어락’이 최근 개봉하며 영화계의 ‘여풍’은 계속될 전망이다.
▲ ‘유잼무죄 노잼유죄’ 대형 영화도 소용없는 입소문의 저력
올해 추석 영화계 대전의 승자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자본이 아낌없이 투자된 대형 영화들이라고 반드시 흥행한다는 법은 없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조인성 주연의 ‘안시성’이 그나마 체면치레를 했다.
반면 입소문을 타고 점차 흥행한 의외의 강자들도 나타났다. ‘유잼무죄 노잼유죄’(재미있으면 무죄, 재미없으면 무죄라는 뜻의 신조어)라는 말의 방증이 된 첫 번째 주자는 올해 8월 개봉한 아니시 차간티 감독의 ‘서치’다. 할리우드 배우 존 조가 주연한 ‘서치’는 컴퓨터 화면과 CCTV, 휴대전화 화면으로만 이어지는 신선한 스크린과 더불어 배우들의 긴장감 넘치는 열연으로 개봉 5일 만에 입소문을 타고 누적관객수 294만명을 기록했다. 배급사인 소니픽쳐스조차 예상하지 못한 흥행에 뒤늦게 존 조의 내한이 추진되기도 했다.
이후 지난 10월 개봉한 ‘완벽한 타인’(감독 )또한 흥미로운 이야기와 속도감 있는 전개로 손익분기점인 180만명의 세 배가 훌쩍 넘는 526만명의 관객을 기록하며 올해 개봉영화 흥행 3위에 등극했다. 입소문이 가장 큰 힘이 된 영화는 바로 밴드 퀸의 일대기를 다룬 음악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다. 10월 마지막 주에 개봉한 ‘보헤미안 랩소디’는 음악의 힘을 증명하듯 800만 관객을 기록하며 퀸의 본고장인 영국보다도 많은 수익을 올렸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현재 ‘스윙키즈’ ‘마약왕’ 등 12월 연말 대형 영화의 개봉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박스오피스에서 선전 중이다.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