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행 4일째 아침이다. 첫 번째 일정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친퀘 테레(Cinque Terre)를 구경할 예정이다. 친퀘 테레는 다섯 개의 땅(Five Lands)이라는 의미의 리구리아어에서 왔다. 이탈리아 리비에라(Italian Riviera; 리비에라는 해안을 일컫는다. 코트다쥐르(프랑스의 리비에라)와 이탈리아의 리비에라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의 남쪽 끝에 있는 절벽과 바위로 이루어진 지역이다. 친퀘 테레 국립공원의 해안을 따라 절벽 위에 흩어져 있는 몬테로소 알 마레(Monterosso al Mare), 베르나차(Vernazza), 코르닐리아(Corniglia), 마나롤라(Manarola), 리오마조레(Riomaggiore) 등 다섯 개의 마을을 말한다.
친퀘 테레(Cinque Terre)에 대한 기록은 11세기 무렵 나타난다. 몬테로소와 베르나차 등 제노아에 가까운 마을이 먼저 베로나의 영향을 받아 커지기 시작했다. 16세기 들어서는 오스만 투르크의 침공에 대비해 요새를 강화하고 새로 방어탑을 건설했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19세기 들어 라 스페치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고, 제노아와 라 스페치아를 철도로 연결하기 전까지 친퀘 테레 마을들을 고기잡이로 근근이 연명할 정도로 고립되어 있었다. 그렇게 내버려지는 바람에 보존된 환경이 오늘날 사람들을 끌어 모아 관광산업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된 셈이다.
자동차로는 친퀘 테레에 갈 수 없다. 2012년 6월 베르나차로 이어지는 도로가 개통됐지만, 마을 사이의 도로는 매우 좁은 편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라 스페치아(La Spezia)에서 기차를 이용하는 편이다.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도 매우 위험하다. 친퀘 테레를 크게 우회해서 제노아(Genoa)와 라 스페치아를 연결하는 도로가 있지만, 200m에서 2.5㎞길이의 터널이 이어지는데다가 좁기까지 해서,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터널을 지나지 못하도록 금하고 있다. 자동차도 일방통행으로 운행하고 있어 터널 앞의 신호등이 푸른색일 때만 진입해야 한다.
라 스페치아와 제노바를 연결하는 완행열차는 다섯 마을에서 모두 정차한다. 그리고 밀라노, 로마, 토리노와 토스카나로부터 운행하는 시외열차가 친퀘 테레를 지나간다. 제노바, 라 스페치아, 레리치(Lerici), 포르토 베네레(Porto Venere) 등의 항구에서 코르닐리아를 제외한 친퀘 테레의 네 마을을 운항하는 여객선도 있다. 친퀘 테레에 들어서면 다섯 마을을 연결하는 “하늘색 길(Sentiero Azzurro)”이라고 불리는 산책로가 있어 걸어서 마을들을 구경할 수도 있다. 특히 리오마조레에서 마나롤라 사이에는 “사랑의 길(Via Dell’Amore)”이라는 휠체어 전용 산책로도 있다.
우리 일행도 라 스페치아(La Spezia)까지 버스로 이동한 다음 기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마을들을 구경하는 것이라서 7시 반에 숙소를 나서야 했다. 구름이 얇게 깔린 날씨다. 햇빛이 쨍쨍 나는 날씨보다 오히려 여행하기에는 좋다. 밀라노의 숙소에서 라 스페치아까지는 버스로 3시간 정도 소요된다. 버스가 숙소를 출발하자 문대현 인솔자는 평소에 직원들에게 ‘너무 잘하려 하지 마라. 다만 최선을 다하라’고 강조한다는 하나투어 회장의 말을 전했다. 적지 않은 인원을 이끌고 해외여행을 안내하려면 인솔자, 현지가이드 그리고 버스기사 등이 한 팀이 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그 중 누군가 혼자서 너무 잘하려 하다보면 갈등이 생기게 된다는 뜻이다. 새겨둘만 하다.
친퀘 테레에 대한 설명을 마친 인솔자는 스웨덴 혼성 4인조 그룹 아바(ABBA)를 소개하고 발표순서로 정리된 그들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데뷔곡 ‘링링’을 비롯해 ‘워털루’, ‘맘마미아’, ‘댄싱 퀸’, ‘치키티타’, ‘위너스 테익 잍 올’, ‘땡큐 포 더 뮤직’ 등 대학시절 즐겨 부르던 노래들이기도 하다. 기왕 노래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친퀘 테레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프랑스 국경에 가까이 음악제로 유명한 산레모가 있다.
1951년 처음 시작한 산레모 음악제(Restival di Sanremo)는 매년 봄이 시작되기 직전에 열리는 이탈리아 최대의 대중음악제이다. 1958년 이탈리아의 싱어송 라이터인 도메니코 모두뇨(Domenico Modugno)와 조니 도렐리(Jonhhy Dorelli)가 불러 우승한 노래 ‘푸르름 속에 푸른색을 칠하라(Nel Blu, Dipinto Di Blu)’는 ‘볼레로(Volare)’라는 이름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모으면서 산레모 가요제를 세상에 알렸다. 후렴구 ‘Volare- oh! oh! Cantare- oh! oh! oh!’는 ‘날아라! 노래하자!’라는 의미로 절로 어깨춤을 들썩이도록 만든다.
1964년, 16살이던 질리오라 칭퀘티(Gigliola Cinquetti)가 불러 우승한 ‘노노레타(Non ho l'età’와 1969년에 그녀가 불러 입상한 ‘비(La Pioggia)’, 그리고 1971에 니콜라 디 바리(Nicola Di Bari)가 불러 우승한 ‘마음은 집시(Il cuore è uno zingaro)’는 우리나라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숙소를 나서서 2시간이 조금 지나자 주위풍경이 일신한다. 도로양편으로 산이 우뚝 솟고 간간이 눈을 이고 있다. 도로가를 흐르는 강물은 탁하면서도 푸른빛을 띤다. 손을 담그면 시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휴게소에 들렀을 때 목덜미로 느낀 한기 때문일까? 다시 아펜니노산맥을 넘어 서쪽으로 넘어가는 모양이다. 수없이 많은 터널들. 이탈리아에서는 산을 깎아내 자연을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 산악지역에서는 터널을 많이 만든다고 한다.
어디쯤인가 터널을 빠져나오자 햇빛조차 다른 느낌이다. 알프스 산자락의 북쪽 지방에서 리구리아해의 바다 쪽으로 나와서인지 지중해성 기후의 따듯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버스에서 내렸을 때는 여전히 쌀쌀했다. 라 스페치아에 도착해서 해군박물관 앞 주차장에서 버스를 내렸다. 여기에서 전철역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 걸렸다. 길가에 서 있는 가로수에 노란 열매가 매달린 것을 보니 오렌지나무다. 이곳에서도 역시 오렌지를 따거나 떨어진 오렌지를 주워가도 경을 친단다. 막상 먹어보아도 쓴맛에 실망할 터이니 굳이 가로수의 오렌지를 따먹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친퀘 테레로 향하는 길이라서인지 가로수로 심은 오렌지나무에도 의미를 더하게 된다. 197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산문작가 에우제니오 몬탈레(Eugenio Montale)가 1921년 발표한 시 ‘레몬(Limoni)’은 친퀘 테레에서 무엇을,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 알려준다. 시인은 제노아에서 태어났지만 친퀘 테레는 시인에 있어 영감의 원천이었다.
“경사진 작은 길을 따라 흘러내린 바람은 / 조릿대 덤불 사이를 빠져나가 / 탁 트인 과수원으로 열리고 / 이끼가 앉은 레몬나무의 줄기 사이로 내닫는다.[...] (The little path that winds down / along the slope plunges through cane-tufts / and opens suddenly into the orchard / among the moss-green trunks / of the lemon trees. [...])”
11시 26분에 친퀘 테레행 열차가 출발했다. 다섯 개의 마을 가운데 몬테로소와 마나롤라 두 곳만 구경할 예정인데, 가장 먼 몬테로소를 먼저 보았다. 열차로는 22분 정도 걸린다고 하니 그리 먼 거리는 아니다. 동해안선 열차처럼 줄곧 바다를 바라보면서 달리는 걸로 생각을 했더니 아니었다. 이곳은 산맥이 바닷가까지 달려와 바다 속으로 사라지듯 깍아지른 절벽이 이어지고 있었다.
결국 열차는 해안가 바위산을 뚫고 만든 동굴 속을 달려야 한다. 서울시의 광역철도노선 가운데 지하철을 연상하면 되겠다. 산맥이 줄기를 만들면서 흘러내리다보니 골짜기에 해당하는 곳에서는 동굴이 끊어지기 마련이다. 캄캄한 동굴 속을 달리던 열차가 이따금씩 그런 곳으로 나오면 파랗게 펼쳐지는 바다를 볼 수 있다. 심지어는 역사가 동굴 속에 걸쳐 있는 곳도 있다. 역사에서 기차를 기다리다 보면 동굴에서 전철머리가 툭 튀어나온다.
이윽고 몬테로소에 도착한 열차에서 내려 역사를 나섰더니 바로 눈앞에 손바닥만 백사장이 펼쳐진다. 여름이면 수영을 하려는 사람들이 몰려온다는 곳이다. 백사장 끝에는 깎아지른 절벽이 서 있다. 알프스 영봉에서 시작한 산줄기가 아펜니노산맥으로 이어지다가 리구리아 해(海)로 풍덩하고 빠지는 모습이다. 그래서 단테도 지옥을 떠나 연옥으로 가는 여정을 설명하면서 이곳의 풍광을 참고했던 모양이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산기슭에 도착했고, / 거기서 너무나 가파른 암벽에 맞닥뜨렸는데, / 민첩한 다리라도 쓸모가 없을 정도였다. (…) 우리는 바위가 부서져 생긴 틈 사이로 올라갔다. / 험준한 벼랑들이 양쪽에서 우리를 죄었고 / 아래의 바닥은 우리의 손과 발을 모두 원했다. (…) 꼭대기는 너무 높아서 시선조차 닿지 못했고 / 비탈을 가파르게 솟아 있었다. 그 가파름은 / 사분원의 중심에서 가운데에 이르는 선보다 더했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 펼쳐지는 백사장을 끼고 걷다가 절벽 하나를 돌아서니 꽤 널찍하게 펼쳐지는 공간이 나타나고, 집들이 옹기종기 커다란 마을을 이루고 있다. 역시 마을 앞으로는 작은 백사장이 펼쳐진다. 다음 길모퉁이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기대감 같은 호기심이 바로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길모퉁이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무엇이야말로 여행이 주는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