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좀비물을 보면서 좀비를 조선시대로 데려가면 난감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조선의 유교관에 따르면 좀비의 목을 자르는 것도 안 되잖아요.“
지난달 25일 공개된 넷플릭스 ‘킹덤’에는 좀비와 조선시대가 만났을 때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키는지 담겼다. 목숨이 위급한 상황에서도 “신체발부 수지부모”를 언급하며 양반의 시체는 태울 수 없다는 황당한 주장이 등장하는가 하면, 이미 좀비가 된 삼대독자를 몰래 데려가려다 멀쩡한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장면이 나온다. 좀비물을 좋아하던 김은희 작가가 2011년부터 구상한 이야기가 드라마로 구현된 것이다.
최근 서울 팔판길 한 카페에서 만난 김 작가는 상하 관계가 분명한 조선시대의 계급 구분이 좀비로 인해 무너지는 장면을 꼭 보고 싶었다고 했다. 양반과 민초들이 모두 좀비가 되면 평등한 사회가 되지 않겠느냐는 도발적인 발상이었다. 그것이 그가 긴 시간 ‘킹덤’에 매달린 이유였다. ‘좀비’ 자체보다 불평등한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는 얘기로도 들렸다. 김 작가가 “우리 좀비는 슬펐으면 좋겠다”고 김성훈 감독에게 말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좀비물의 긴장감과 공포도 좋아하지만, 전 캐릭터들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상황이 좋았어요. 영화 ‘28주’에서 뛰어오는 좀비들에게 식욕만 남은 사람의 슬픔이 느껴졌어요. 슬픈 좀비물을 한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식욕만 남은 사람들이 조선시대 땅에 떨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배고픔이 더 잘 구현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킹덤’에도 좀비에게 공포만 느끼는 것이 아니길 바랐어요. 그들도 살아 숨 쉬던 사람들이고 함께 고통을 겪던 이웃의 느낌이 살았으면 싶었죠. 아비를 먹는 아들, 자식을 먹는 어미의 장면도 많이 넣으려고 했고요.”
사극을 쓰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남아있는 자료도 많지 않고 그나마 있는 자료는 모두 한문이었다. 사학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도 각자의 사관이 달랐다. 조선 왕실에 비해 백성들의 기록은 적은 것도 문제였다.
직접 전국의 한옥을 다니며 집의 구조를 살피기도 했다. 좀비가 나타났을 때 숨을 만한 곳이 어디인지 찾기 위해서였다. 담이 높아 좀비들이 넘기 어려워 보이는 양반들의 집과 달리, 백성들의 집은 숨을 만한 곳이 많지 않았다. 담도 낮고 문과 창문도 약해 보였다.
‘킹덤’에는 왕부터 천민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백성들의 이야기가 주요 축을 형성하지만 정작 주인공은 왕세자 이창(주지훈)이다. 이에 대해 김 작가는 역사적 사실을 참고했다고 말했다.
“아무리 똑똑한 민초라도 조선시대에서 혁명을 성공시킨 적은 없잖아요. 바꿀 힘을 가진 사람은 왕족이라고 생각했죠. 처음엔 천민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시청자들이 생뚱맞게 받아들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무책임한 위정자들도 많지만 전 도망가지 않고 제자리를 지킨 사람도 많다고 생각해요. 권력자라고 누구나 탐욕스럽진 않을 수 있잖아요. 여러 단면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킹덤’을 본 시청자들은 너무 짧다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45분 분량의 6회가 시즌1의 전부였다. 동래에서 시작해 한양까지 밀고 들어오는 전체 이야기 중 상주까지만 진행됐다. 김 작가는 이 같은 반응을 예상했다고 했다.
“여러 가지 제작 환경적인 요인이 있었어요. 70~80분 분량의 16부 리듬으로 쓰는 것에 익숙했는데 이런 건 처음 해보는 작업이었죠. 정해진 시간 안에 12부는 불가능할 것 같았어요. 또 넷플릭스는 짧은 시간을 좋아하더라고요. 시청자들이 정주행해야 하니까요. 처음엔 8부로 기획했지만 진행하다 보니 더 많은 얘기들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6부로 두 시즌을 하게 됐죠. 결국엔 (지금 형태가) 최선은 아닐 수 있지만 최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많은 분들이 이렇게 끝내놓으면 어떡하냐고 할 것 같았죠. 그래서 최대한 빨리 시즌2를 쓰기 시작했어요. 시즌3요? 만약 시즌3를 한다면 한양까지가 아니라 더 큰 세계에서 많은 얘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 사진=박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