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스타 배우, 톱 배우들 때문에 영화를 보러 가는 경우가 있지만, 영화 ‘사바하’(장재현)속에는 배우가 없다. 이야기의 등장인물들 뿐이다. 주인공인 박목사를 맡은 이정재도 그렇다. 스크린에서 멋진 이정재, 혹은 톱 배우 이정재의 또 다른 면모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아마 원했던 것을 얻기는 힘들 것이다. ‘사바하’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박목사 뿐이다. 물론 좋은 의미다. 연기하는 배우가 아닌 이야기 자체의 완성도가 돋보이고, 배우는 철저히 이야기의 구성요소로 쓰인다. 영화로서는 이상적이다. 개봉을 앞두고 서울 팔판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정재 또한 “제가 원했던 것이 그런 그림”이라고 맞장구쳤다.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 영화는 배우의 매력보다는 이야기의 매력이 더 커야 하는 장르”라고 이정재는 말했다. 분명 캐릭터의 매력, 혹은 특정한 사건으로 끌고 가는 영화도 분명 있지만 적어도 ‘사바하’는 배우나 캐릭터가 영화 자체의 이야기보다 앞서면 안 되는 영화라고 처음부터 생각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바하는 마치 양파 같은 영화다. 양파의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가듯이, 하나씩 떨어지는 단서와 이야기를 종합하다 보면 마지막의 주제에 도달하게 된다.
“처음 ‘사바하’를 접했을 때, 이 영화는 이야기의 퍼즐들이 맞아떨어지는 재미로 보는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박목사는 여태까지 제가 해왔던 캐릭터 중 가장 도드라지지 않는 배역이에요. 수사를 해 나가며 인물을 만나고 사연을 보고, 관찰하는 입장에 가깝죠. 그래서 출연을 결정했을 때,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잘 받아주고 이야기들을 잘 모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완성된 영화를 본 그의 느낌은 어떨까. 이정재는 보기 드문 만족감을 드러냈다. “영화를 참 잘했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영화를 하길 잘 했다’와 ‘영화를 참 잘 만들었다’ 두 가지가 양립하는 감상이죠. 노력한 것만큼 완성도 있게 나온 것도 기분 좋았지만 장재현 감독님이 후반까지 꼼꼼하게 잘 만들어주셔서, 제가 본 시나리오보다 훨씬 완성도가 높게 나왔어요.”
영화를 보고 난 사람들의 감상이 저마다 다 달랐던 것도 이정재가 재미있어한 부분이다. 영화가 가진 이야기에 만족하는 사람, 혹은 이야기가 가진 구조를 좋아하는 사람, 혹은 ‘크게 자극적이진 않았다’며 기대한 바가 달랐던 사람과 촘촘한 짜임새에서 매력을 느낀 사람까지. 이정재는 “‘사바하’가 어떤 영화인지 소개할 때 더 잘 설명해야겠다”면서도, “무슨 말을 해도 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그저 ‘박목사가 수상한 종교를 파헤치는 영화’라고만 말하고 있긴 하다”며 웃었다.
영화 속 박목사의 서사는 정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이정재의 말마따나 그는 목격자에 가깝기에, 그의 개인사가 중요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인공이라면 주인공인 그가 ‘대체 왜 사이비를 쫓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돈 때문도, 혹은 종교적 신념 때문도 아니다. 이정재는 박목사에 대해 “신을 만나고 싶은 남자”라고 정의했다.
“그가 극 중에서 목도해 온 세상은 한없이 험악해요. 목사로서 그 광경을 보면서 신에게 ‘대체 당신은 어디에 계시느냐’며 묻고 싶고, ‘왜 이 불쌍한 이들을 보살펴주지 않느냐’고 따지고 싶은 마음이 크죠. 신이 정말 있다면 나 좀 만납시다, 라는 게 박목사가 가진 동기라고 생각해요.”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사바하’는 종교 영화는 아니에요. 종교관이나 나쁜 사이비를 설명하는 영화도 아니죠. 차라리 범죄 영화에 더 가까워요. 잘못된 종교인들이 저지르는 범죄 사건,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종교를 악용할 때, 목사이기 때문에 더 선악을 잘 분간할 수 있는 사람이 그들을 파헤치고 응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런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종교는 수단일 뿐, 사실은 사람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라고 이정재는 ‘사바하’를 정의했다. ‘사바하’는 오는 20일 개봉한다. 15세가.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