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돈’(감독 박누리)속 일현(류준열)은 관객을 대변한다. 특별한 누군가가 아닌, 다수로 묶여도 크게 튀지 않는 평범한 사람. ‘빽’도 없고 ‘줄’도 없지만 큰 돈을 벌어 부자가 되고 싶은 자. 그러다 어느 날 유혹을 만나고, 상상보다 더 큰 액수를 벌게 되며 일현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일현이를 비롯해 영화 ‘돈’이 제게 가지는 의미는 커요.” 최근 서울 팔판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류준열의 말이다.
‘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고로 치는 가치인 돈을 다룬다. 자연스레 자극적이거나 극단적으로 치닫기는 매우 쉽다. 하지만 류준열은 “영화의 소재가 돈일 뿐, 관계에 집중하는 것이 좋았다”며 시나리오를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일현은 영화 초반에는 무일푼으로 시작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어마어마한 돈을 번다. 하지만 영화는 일현이 싼 것을 쓰다 비싼 것을 쓰는 모습이 아니라, 일현의 인간관계가 변하는 모습을 중점적으로 그린다.
“가까운 지인들과의 관계를 통해 돈을 가진 일현의 평범함을 강조하는 게 좋아 보였어요. 돈이 없었을 때의 일현이 주변 사람들과 쌓는 관계, 그리고 생겼을 때 그 관계들이 변해가는 모습에 관심이 많이 갔거든요. 제 직업도 비슷한 면이 있어요. 배우라는 직업이 갖는 환경이 독특하고,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은 것까지 더해져서 자꾸 인간관계가 변화하다 보니 일현과 제가 통하는 부분이 있다 싶었죠.”
‘돈’이라는 영화는 그에게 단순히 연기적 성장 뿐만 아니라 개인적 성장도 안겨줬단다. ‘돈’을 찍기 전의 영화란 그에게, 말하자면 ‘울고불고 하며 힘들게 만든 후, 잘 되면 좋고 안 되면 너무 속상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하면서 ‘아, 영화 하는 재미가 이런 거구나’하고 많이 느꼈어요. 잘 되고 안 되고는 두 번째 문제고, 제가 영화를 하며 좋은 추억을 만드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느꼈죠. 제가 좋은 경험을 하고 집중할수록 영화도 잘 되고, 제게도 좋은 에너지가 쌓이는 거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그래서 이 영화가 제게 주는 의미가 크다고 말씀드린 거예요.”
류준열은 ‘대박나세요’ ‘잘 되세요’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식당을 경영하는 사람에게 ‘대박나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돈을 많이 벌라는 이야기에 가깝지 훌륭한 요리사나 경영자가 되라는 의미가 아닌 것 같아서란다. 그런 의미에서의 대박이나 성공은 순수한 목표가 아니다. 통장에 10억, 100억이란 돈이 쌓였다고 해서 식당을 그만두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처럼, 사람이 돈 위에 목표로서 존재해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그는 믿는다.
“이 일을 하면서, 돈이 목표가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처음에 했어요. 돈 많이 버는 배우에서 끝나면 안 된다 싶고요. 제 꿈이야 당연히 좋은 배우가 되는 거지만 그게 돈을 많이 버는 배우라기보단 사람들이 많이 찾는 배우에 가깝다는 거죠. 이 일을 학교에서 배울 때 가장 중요하다고 배운 것이 ‘공동 작업’이에요. 영화는 모두 같이 만드는 거잖아요. 제가 주인공이라고 해서 혼자만 잘 하면 영화를 만들 수 없어요.”
“물론 배우도 어떤 자본적인 유혹이 분명 존재하는 직업이에요. 하지만 전 간도 정말 작고, 뭔가 일을 벌렸을 때 수습하는 능력이 별로 없어요. 제일 빠른 길이야말로 정직한 길이라고 생각해요. 데뷔 초창기에도 가끔 그런 고민을 하던 순간이 있었어요. 지금도 돈 위에 사람이 있다고 딱 잘라서 말할 수 있는 가치관의 사람은 아니에요. 하지만 쉽게 번 돈은 쉽게 나간다 생각해요. 끊임없이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즐겁게 쓰자 생각하고, 돈 위에 사람이 있다는 마인드를 제게 스스로 계속 주입하며 살고 싶어요.”
‘돈’은 오는 20일 개봉한다.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