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질경찰’(감독 이정범) 대본을 전소니는 한 번 거절했다. 상업영화를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신인이 용감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악질경찰’의 대본을 거절한 이유는 책임감 때문이었다. 자신이 해 온 배역보다 커서라던가, 부담스러워서라던가 하는 이유는 전혀 아니었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서울 팔판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전소니는 “상업영화는 아예 몰라서 겁도 안 났어요. 그런데 영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를 내가 해도 될까? 하는 생각 때문에 한 번 시나리오를 거절했죠.”라고 말했다.
“시나리오를 보고 든 생각은, ‘내가 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안 주고 할 수 있을까?’하는 물음이었어요, 자신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거절했죠. 하지만 다시 한 번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미나 역에 마음이 갔어요. 제가 그간 해온 역할들과 갖는 기시감이 적었고, 굉장히 다채로운 인물이었기 때문이에요. 애초에 거절하기 전부터 성격이 강한 데에서 그치지 않고, 표현하고 행동하는 미나가 좋았거든요. 그래서 다시 한 번 시나리오를 받고 나서 ‘내가 이 역할과 영화가 잘못된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도록 열심히 한다면 괜찮지 않을까’하는 고려 끝에 미나 역을 하게 됐어요.”
영화 속 미나는 2014년 4월 일어난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다. 영화에서 미나의 과거사가 정확하게 다뤄지지는 않으나 미나의 친구는 세월호 참사의 사망자이며, 그녀는 짐작컨대 생존자다. 세월호 소재가 아직은 민감한 만큼 전소니가 느꼈을 부담감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전소니는 “매번 제가 독립 영화를 찍으면서 사회적 이슈를 다룰 때마다 아쉬웠던 부분이 있다. 관객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세월호 이야기뿐만 아니라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영화에서 제가 연기를 할 때, 관객들을 만나기가 어려워서 너무 아쉬웠어요. 그 시도가 부족하고 서투르고, 혹은 진심이 전해지지 않는다 해도,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상업영화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가치있는 시도가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죠. 부담이나 책임으로만 느끼지 않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다루는 미나의 캐릭터는 소모적인 면이 있다.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다투기보다는 극단적인 선택을 반복하거나, 결국은 좋은 결말을 맺지 못한다는 부분이 그렇다. 전소니에게도 미나의 소모적인 부분은 큰 고민을 거듭하게 했다.
“미나의 마지막 결정에 관해서는 촬영 당일날 아침까지도 감독님과 토론했어요. 대사도 그렇고 장면도 그렇고, 최대한 미나를 이해하려고 했죠. 저도 사실 여성 배우로서 여성 캐릭터들이 소모적으로 쓰이는 부분을 크게 경계하려고 해요. 그런데, 의외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제가 다시 미나라는 캐릭터를 연기하기를 선택하게 된 것도 미나가 생각보다 그리 소모적이지는 않은 아이이기 때문이에요. 미나의 결말이 언뜻 보면 필호의 각성을 위한 장치같지만, 미나의 입장에서 들여다보면 아니거든요.”
전소니의 말을 빌자면, 미나는 어른들을 보며 살아갈 날을 기대하려고 하는 아이다. 몇 년 안 되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미나는 자신의 할머니나 세월호 사고로 사망한 친구까지, 자신의 사람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에 반해 그들을 지킬 수 없었던 상실감이 큰 캐릭터다. 앞으로 살아갈 날에 기대는 별로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나가 살아가는 힘은 그들의 죽음을 헛되게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는 책임감이라는 것이다.
“미나가 처한 상황 안에서, 악다구니를 쓰는 어른들을 마주했을 때 미나가 느낄 감정을 생각해봤어요. 그들을 보면서 지나간 미나의 상실과, 앞으로의 기대를 생각했죠. 미나는 몇 해 안 되는 인생에서 놓친 사람들이 분명 있는데, 앞으로 살아갈 내 인생에서도 누군가를 놓치게 되진 않을까 하고 희망을 잃게 된 거예요. 그래서 저는 미나의 선택이 단지 소모적으로만 쓰이는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미나라는 인물이 상황을 받아들인 후에 미나로서 선택한 것이죠.”
“작은 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들은 적지만, 그만큼 그 관객들은 영화에 호의적인 성향일 가능성이 커요. 하지만 상업영화는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다양한 관에서 상영되는 만큼 다양한 관객들을 만나고, 다채로운 반응을 얻겠죠. ‘악질경찰’이 관객에게 어떤 작품이 될 지는 모르겠어요. 이왕이면 아까운 시간이 아니셨으면 좋겠고, 좋은 생각이건 나쁜 생각이건, 생각을 거듭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정말 보람찰 것 같아요.”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