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이다. ‘생일’(감독 이종언)은 세월호 참사 이후의 유가족을 주인공으로 하면서도 그들을 전시하거나 불필요하게 소모하지 않는 영화다. 적당한 거리에서 자연스러운 공감, 연대의 힘을 이끌어냈다. 참사로 인해 상처 입은 사람들의 치유를 기원하는 잔잔한 씻김굿에 가까운 영화다.
다행히 ‘생일’은 한 가족의 비밀이 조금씩 벗겨지는 미스터리 구조를 빌려 서사를 진행한다. 커다란 짐보따리를 들고 밤늦게 귀국한 남편 정일(설경구)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 순남(전도연)의 마음, 순남이 유가족 모임이나 희생자들의 생일잔치 참석을 거부하는 이유, 순남을 지켜보는 주변인들의 마음 등 궁금한 장면이 아무 때나 불쑥 튀어나온다. 호기심으로 이야기를 줄기를 따라가는 건 인물들의 속마음을 여는 것과 같다.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사건, 그리고 인물을 다루는 감독의 배려가 엿보이는 전개 방식이다.
다행히 ‘생일’은 관객들의 마음을 자극할 생각이 없는 영화다. 스크린 속에서 존재하는 가상의 이야기로 그릴 생각 역시 없다. 대신 감독은 2015년 여름 안산에 위치한 치유공간 ‘이웃’에서 봉사하며 보고 느낀 경험을 영화에 담았다. 세월호 참사라는 거대한 사건 대신 그 주변에서 영향을 받은 사람들을 보여주고, 영화적이고 재미있는 있는 이야기 대신 그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그렸다. 유가족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공감한 감독의 경험과 시선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다행히 ‘생일’은 끝까지 특정 메시지를 던지지 않는다. 관객에게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자’거나 ‘유가족의 마음을 이해하자’고 말하지 않는다. 영화에는 유가족이 우는 소리에 불편해하는 옆집 주민들, 보상금이 얼마냐고 태연하게 묻는 친척 어른 등 조금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균형을 맞추기 위함이 아니다. ‘생일’은 유가족이 겪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하나의 사건과 슬픔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준다. 같은 유가족들끼리의 생각 역시 모두 다르다. 마지막 부분의 생일잔치 장면에서 정일과 남순이 느끼는 감정과 위로에 관객 역시 몰입할 수 있는 이유다.
베테랑 배우인 설경구와 전도연가 주연을 맡은 것 역시 다행인 일이다. 두 베테랑 배우는 각자의 전작들에서 보여준 강렬한 인상을 지우고 잔잔한 일상 연기에 스며들어 관객의 몰입을 이끌어낸다. 터뜨리기보다 누르고 또 누르며 절제하는 연기가 특히 인상적이다. 영화를 보며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면, 그건 2시간 동안 차곡차곡 관객의 신뢰를 쌓는 두 배우의 공이다. 다음달 3일 개봉. 전체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