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성년’(감독 김윤석)이 영화가 되기까지는 5년이 걸렸다. 2014년, 청년 창작 희곡 발표 모임에서 본 ‘미성년’의 첫 장면을 보고 김윤석은 웃음부터 터졌단다. “고등학생 둘이 나와서 그러는 거예요. ‘니네 엄마가 우리 아빠 꼬셨어. 불륜 중이야. 알아?’하니까 ‘어떻게 모르냐? 배가 불러오는데.’라고 답하는 거예요. 웃음이 안 터질 수가 없어요. 어른들이라면 이렇게 당당히 말하지 못했겠죠. 어른들은 이런 일을 먼저 숨기고 보니까.” 최근 서울 팔판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윤석의 말이다.
‘미성년’은 본래 ‘소년 B가 사는 집’이라는 대표작으로 이름을 알린 이보람 작가의 극본이었다. 희곡이 제대로 완성되지도 않은 상태였지만 김윤석은 처음부터 ‘미성년’이 좋았다. 언뜻 보면 흔한 불륜 막장드라마다. 하지만 그 불륜을 보는 시선은 신선했다. 불륜으로 인한 임신, 그것을 둘러싼 어른들의 숨기고 분노하는 드라마가 아니었다. 드러내고 수습하는 열 일곱 소녀들의 이야기였다.
“저는 작정하고 웃기는 영화는 사실 별로 안 좋아해요. 상황이 주는 아이러니한 웃음을 훨씬 좋아하죠. ‘미성년’이 그랬어요. 어른들이 저지른 일을 두 명의 아이들이 수습하려는 것과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신선했고, 그 사이에 일어나는 상황들이 우스웠죠. 늘 보던 소재를 이렇게 풀어내갈 수 있다는 게 너무 인상적이어서 이보람 작가를 만나 영화화를 제의했어요.”
2014년 12월에 모임에서 처음 공연 아닌 공연을 본 후, 5년 만에 ‘미성년’이 나왔다. 연극 대본의 영화화는 그리 드물지 않은 시도지만, 그 시도가 결과물을 내는 일은 좀처럼 많지 않다. 영화화 과정에서 다양한 이유로 포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김윤석은 “하지만 저는 해냈다 말입니다”라며 즐거워했다. 5년 동안 끈기있게, 이보람 작가와 함께 고민하며 만들어낸 작업이기에 더 잊을 수 없는 영화가 될 거라는 게 김윤석의 말이다.
평소 김윤석의 강렬하고 사나운 이미지를 기대한다면 ‘미성년’은 그 기대를 배반하는 작품이다. 작품은 10대 여고생의 시선이 주류를 이루며, 어찌 보면 여성주의적이다.“일반 대중들은 제가 출연했던 작품 중에서도 강렬한 배역들을 많이 기억하고, 그 이미지로 절 기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자연스럽게 ‘미성년’에서 그런 것들을 기대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를 아는 친한 분들은 전부 저다운 시나리오라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남자라서 태생적으로 차이가 날 수는 있지만, 작가도, 동료배우도, ‘미성년’의 편집기사도, 헤드 PD도 모두 여성이었어요. 자문을 구하고, 모르면 상의하곤 했죠. 그런 것들도 작업에서 인상깊었던 점이에요.”
그가 연출과 연기를 동시에 맡았다는 것도 인상적인 점이다. 김윤석이 연기한 대원은 ‘미성년’의 구심점이 되는 인물이지만, 사건에서는 비껴나 있다. 대원이 벌인 불륜 때문에 네 명의 여자가 얽히지만 대원은 사건을 한없이 회피하고 도망치며, 주인공들 앞에서도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김윤석은 자신이 대원을 연기한 이유에 관해 “남에게 맡기면 실례인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어떤 집단을 이루는 구성원을 ‘대원’이라고 해요. 이름이 뜻하듯, 대원이라는 역할은 익명성을 띠길 바랐어요. 인간의 가장 약한 모습을 대변하는 사람이죠. 이 사람은 분노가 없어요.그저 도망 가고 회피하는 사람이죠. 쉽게 말하면 안타고니스트, 즉 나쁜 놈인데 너무 나쁜 놈으로 만들면 ‘왜 영주(염정아)가 이 사람과 결혼했지?’라는 의문이 생기게 마련이더라고요. 그래서 나름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일탈했고, 자신이 만든 사건에서 회피하는 사람으로 만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모든 장면에서 포커싱이 잘 안 되고, 대사도 별로 없어요. 할 말도 없는 남자예요. 왜냐면 죄 지은 주제에 할 말이 있을 리 없잖아요. 주연급 배우에게 시키면 실례인 역할이죠. 얼굴도 안 나오고, 말도 없고.”
“개봉을 앞두니 아직도 얼떨떨해요. 제가 배우로서 연기한 다른 작품을 개봉할 때보다 딱 열 배쯤 떨리는 것 같아요. 신경이 안 쓰이는 곳이 없어요. 신인 배우 분들이 언론시사회에서 기자 분들에게 답변할 때도 막 신경쓰이더라고요. 오히려 스코어는 신경쓰이지 않아요. 거기까지 미리 예상하고 가늠할 겨를이 없어요. 어쨌든 관객들이 재미있게 보셨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동시에 보기 힘든 장면들을 많이 넣어놨어요. 제목인 ‘미성년’은 ‘우리는 모두 미성년이다’의 줄임말이에요.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이기도 하죠.”
‘미성년’은 오는 11일 개봉한다.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